(택스토리)성스러운 일을 더욱 빛나게 할 세금

입력 : 2013-12-24 오전 9:43:44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법과 원칙을 중요시 하는 정부여서 그런지 요즘 '성역 없는 법집행', '성역 없는 수사' 등의 표현을 자주 들어보게 됩니다.
 
사전에서 '성역(聖域)'은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나름대로의 구역이나 문제 삼지 않기로 한 사항이나 인물, 단체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표현돼 있습니다.
 
헌법에서 정한 대로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하기 때문에 법집행에 있어서 예외가 없다는 말로 비유되고 있는 것인데요. 특히 공명정대해야 할 나랏일에 특정 세력이나 집단에 예외를 적용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정말 우리사회의 법집행에서 성역이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아주 '공공연히' 법집행에서 '성역'임이 인정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종교인에 대한 세법적용 문제입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원칙이 유독 종교인의 소득에 대해서는 적용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인데요.
 
세금에 대해 사실상 '성역'으로 존재하다 보니 정확하게 종교인의 소득이 어느 정도이고, 종교시설이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어느정도인지도 파악할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요즘 흔히 말하는 '지하경제'인 셈이죠.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2011년 기준으로 작성한 '한국의 종교현황'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대략 10만9668개의 종교시설이 있고, 23만2811명의 종교인(일반신도가 아닌 목사나 스님 등 교직자)이 살고 있습니다.
 
이중에서도 개신교가 가장 많은 7만7966곳의 종교시설과 14만483명의 종교인을 보유하고 있고, 불교가 2만6791곳 4만6905명, 천주교 1609곳 1만5918명 등으로 파악되고 있는데요.
 
(자료=문화체육관광부, 뉴스토마토)
 
이 통계를 100%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이들 종교인들의 소득은 물론 종교시설이 갖고 있는 유형과 무형의 재산규모와 신도들이 내는 헌금(시주금)의 규모는 어림잡아 추산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국에서 노른자위 땅이이란 땅과 경치 좋다는 관광지에는 여지 없이 종교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것을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말이죠.
 
때문에 종교인의 소득을 과세대상에 포함시키려는 노력은 꾸준히 계속됐었는데요.
 
2000년대 초반 일부 천주교의 신부와 수녀들을 중심으로 자발적 납세운동이 전개되면서 다른 종교인들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었고, 기독교와 불교 등에 대한 납세요구도 거세지면서 지금까지 논란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물론 논란만 계속됐을뿐 실제 과세로 이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종교인에 대한 납세요구는 무지한 어린 양이나 불쌍한 중생들의 성스러운 일에 대한 침범쯤으로 치부됐기 때문이죠.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이 높디 높은 성역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는 것인데요. 지난해 기획재정부가 본격적인 과세움직임을 보이면서 올해 드디어 종교인 과세를 법률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종교라는 성역의 힘이 어찌나 센지 법률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기가 여간 쉽지가 않은 상황입니다.
 
관련 법률안을 심의하고 있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지난 23일 열린 조세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종교인 과세를 위한 세법개정안을 이번 임시국회가 아닌 내년에 가서 검토하자는 식으로 미루기에 이르렀는데요. 뒷 배경에는 역시 종교인들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있었다는 전언입니다.
 
사실 이번에 국회에 제출된 종교인 과세방안도 과세하겠다는 시도에는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그 내용에서는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종교인의 소득을 근로의 대가인 근로소득이 아닌 '사례금'으로 간주, 기타소득으로 과세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세금을 내더라도 근로소득자보다는 훨씬 적은 세금을 낼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특히 기타소득으로 과세하면서 일정부분(80%)을 필요경비로 인정, 과세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기 때문에 고소득 종교인과 가난한 종교인과의 세금차이가 크지 않게 된 점은 종교인 사이에서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의아한 것은 이런 과세방식이 종교인들의 입김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인데요. 정부가 세법을 만들기 전에 종교인들과 사전협의를 거쳤는데, 그 과정에서 논의 끝에 근로소득보다는 기타소득이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는 겁니다. 분명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납득이 잘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사전협의과정에 참가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종교인들은 자신의 활동을 '근로', 즉 '노동'이라고 평가하는 것에 대해 특히 반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이왕에 세금을 내더라도 근로소득세가 아닌 기타소득세로 내겠다는 데 합의점이 이뤄졌다는 것인데요.
 
답답한 마음에 성경을 찾아보니 이런 부분은 더 의아하게 다가옵니다.
 
그리스도교 초대 사도인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남긴 말을 옮긴 성경 데살로니가 후서 제3장 제10절을 보면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또 같은 장의 다른 구절에서는 '말 없이 일해서 제 힘으로 벌어 먹도록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일 하기 싫은 자 먹지도 말라'는 말로도 전해지는데요.
 
누가 봐도 노동의 성스러움을 말하는 구절인데 왜 그들은 스스로의 노동을 노동이라고 말하길 꺼리는 것일까요. 천주교 등 이미 상당수 종교인들이 자발적으로 근로에 대한 근로소득세를 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세금내기 싫어하면 세금을 쓰지도 못하게 하라'라고 이해해야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교인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세금의 혜택을 받고 있다면 국민의 의무인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그 성스러운 일을 더 성스럽게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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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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