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하늬기자] 우리는 왜 매일 '돈, 돈, 돈'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이는 곧 내가 이자를 갚으면 누군가의 대출금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은행 시스템에는 이자가 없고, 중앙은행이 무한정 돈을 찍어낼 수는 없다.
이자가 없다니 무슨소리인가. 외부와 전혀 소통을 하지 않는 단일한 통화체제를 가지고 있는 섬이 있다고 가정해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섬에서 중앙은행은 딱 1만원을 발행하고, 시민 김씨는 이 돈을 빌려 1년 후 이자까지 1만500원의 돈을 갚아야 한다. 김씨는 시민 박씨에게 배를 구입한 뒤 열심히 물고기를 잡아서 돈을 벌었다. 김씨는 1년 후 중앙은행에 1만500원을 갚을 수 있을까. 정답은 '절대 갚을 수 없다'이다.
섬에는 돈이 딱 1만원만 있고 이자로 내야 하는 돈 500원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를 갚는 방법은 딱 하나이다. 중앙은행이 또다시 500원을 찍어내고 또다른 시민 이씨가 대출하는 것.
결국 은행 시스템에는 '이자'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이 이자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돈을 찍어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빚'으로 쌓아 올린 인플레이션이 항상 호황시절로만 이뤄질 수는 없다. 그것이 최고점에 이르렀을 때 디플레이션이라는 절망이 나타난다. 즉 섬으로 다시 돌아가 김씨가 1만500원을 다 갚으면 또다른 이씨는 돈을 갚을 수 없어 파산하게 된다.
즉 '내가 이자를 갚으면 누군가의 대출금을 가져와야 한다'는 뜻이된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자가 없다'는 말은 '누군가는 파산한다'는 뜻이다. 모든 돈이 빚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EBS자본주의 제작팀이 지은 <자본주의>에서는 현 은행 시스템을 의자놀이로 비유한다.
"현 은행 시스템은 아이들의 의자 놀이와 다를 바가 없다. 노래하고 춤추는 동안은 낙오자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음악이 멈추면 언제나 탈락자가 생긴다. 의자는 언제나 사람보다 모자라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지, 빚지는 사람이 있어야 돌아가는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감춰진 진실'을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경제기사를 읽어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진짜 필요한 실물 경제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아 '몰라서' 당하는, 즉 자본주의에 대한 지식의 필요성을 이야기 하는 것.
이 책은 이야기한다. 왜 은행이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대출을 해주는지, 은행직원이 왜 특정 상품을 추천하는지 은행의 '민낯'을 가감없이 설명해준다.
결국 우리는 너무 몰라서, 너무 믿어서, 너무 순진해서 돈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 톰 소여의 모험을 쓴 마크 트웨인이 '은행은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우산을 걷는다'는 은행의 맨얼굴을.
하지만 아직도 많은 은행장들은 새로 취임할 때 '비 오는 날에 우산을 뺏지 않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올 초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비올 때 우산 뺏는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고백했다. 즉 은행은 계속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회사이다. 비올 때 우산을 뺏어야 이익이 나는 조직이라는 것.
존 스타인벡의 소설 < 분노의 포도 >에서도 은행은 괴물로 표현된다. <자본주의>는 말한다. 은행은 당신 편이 '전혀' 아닐 수 있다고.
문제는 현대인의 일상이 '금융'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는 것이다. 우리가 은행의 맨얼굴을 알았다고 무턱대고 '적'을 지고 살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자본주의>는 말한다. 금융지식이 있어야 살아남는다고. 실제로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국민들이 금융에 너무 무지하다는 인식이 커졌다. 수많은 파생상품을 소비자들이 '모르고' 구입해 피해를 키웠다. OECD에서도 이제는 금융이해력이 더는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상식이 아니라 이해력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는 필수도구가 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불량 금융상품을 골라낼 수 있는 '금융지식'이 필요하다. 우리는 덕지덕지 발라 두텁게 화장해 포장한 '자본주의'에 언제까지 속고만 살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