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수경기자] "일본인 단체 관광객을 받아본지가 언젠지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아마 명동이나 종로 일대 비즈니스호텔은 거의 다 비슷한 처지라고 보면 될겁니다."
16일 점심 무렵 해외 관광객들의 국내 쇼핑 명소인 명동과 남대문, 종로 일대. 하지만 일본인 관광객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평소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치던 인사동 골목이 점심시간인데도 썰렁한 모습.(사진=김수경 기자)
그나마 점심시간인 만큼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맛집이 많이 몰려 있는 종로 인사동 골목
입구에 손님을 태우고 온 40인승 관광버스 3대가 일렬로 늘어선 것이 눈에 띄었지만 좌
석은 1/3도 채 차지 않았다.
기록적인 엔저에 아베정권의 신사 참배로 감정 문제까지 얽히면서 국내를 찾는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뚝 끊긴 상황이다.
통계청과 주(駐) 일본 한국대사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들어11월까지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 관광객 수는 253만2000명으로 2012년 같은 기간 329만1000명에 비해 23.1%나 감소했다.
이 같은 일본인 관광객 감소는 국내 비지니스 호텔 업계에 타격을 줬다. 비즈니스 호텔은 고급호텔에 비해 숙박료는 크게 저렴한 반면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최근 몇 년간 실용성을 우선시 하는 일본 관광객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몇 년 새 비즈니스호텔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면서 특히 관광지 일대는 난립을 방불케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불어닥친 엔저 여파로 주 투숙객인 일본인 관광객이 급감하면서 업계 전반이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증가하고 있지만 이들은 특급 호텔 아니면 아예 저렴한 숙소를 선호하는 편이라 비지니스 호텔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결국 일본인 관광객을 대체할 만한 수요가 없는 것.
종로에서 A 비즈니스호텔을 운영 중인 이모(50)씨는 "주변 인근 상권도 일본인 관광객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면서 다들 죽는소리를 하고 있다"며 "엔저쇼크로 문을 닫는 가게들까지 생겨나는 판국에 숙박업소라도 장사가 잘 될리가 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일본인 관광객 전용으로 5개층 32개 객실 규모인 인근 B호텔의 경우 숙박 기간 동안 무료 세탁서비스에 아침식사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계속 떨어지는 투숙률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종로 일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C호텔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예년 같으면 외국인 관광객으로 붐벼야 할 로비가 한산하다.
C호텔 관계자는 "작년까지만 해도 손님들 대다수가 일본인 이었지만 최근 몇 달 간 일본인 투숙률이 30% 넘게 떨어진 것 같다"며 "우리 호텔만의 문제가 아니라 업계 전반의 어려움인 만큼 차별화된 서비스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들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낙원동 악기상가 뒷길에 비즈니스호텔촌을 형성하고 있다. 이비스 엠버서더,비즈웰,트라운호텔,호텔 아이콘 등이 일렬로 늘어서 있다.(사진=김수경 기자)
심지어 그나마 있는 일본인 손님들도 가격이 더 저렴한 곳을 찾으면서 모텔로 일부 고객층을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
종로에 위치한 한 대형모텔 지배인은 "최근에 부쩍 가족 단위나 2인 규모의 일본인 손님들이많이 찾아오고 있다"며 "비즈니스호텔보다 가격은 저렴한데다 시설도 크게 떨어지지 않다보니 알뜰족들이 모텔로 많이 몰려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3년간 비즈니스호텔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은 서울 명동이다. 화장품과 의류 매장
이 밀집해 있고 남대문이나 종로 등 관광코스가 연결돼 있는 곳이라 외국인 관광객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오피스텔 건물을 비즈니스호텔로 전환해 운영하고 있는 최모(47)씨는 "명동에서만 터를
잡고 거의 6년째 오피스텔은 운영해 오다 재작년부터 공실률이 늘어 사업을 접을까 고민했다"며 "그 당시 급증하는 관광객으로 서울 시내 호텔 객실이 부족할 거라는 얘기를 듣도 부랴부랴 비즈니스호텔로 용도를 변경하면서 호텔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정말 울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그는 "대출까지 얻어 무리해서 비즈니스호텔로 바꿨는데 공사가 끝나자 마자 엔저 폭격을 맞았다"며 "빈방을 그냥 놔둘수 없는 처지라 내국인 대실까지하면서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명동역 앞에서 비즈니스호텔은 운영 중인 김모(42)씨도 얼마 전 직원 수를 대폭 줄이고
일본어를 하는 직원도 단 한명만 남겨둔 상태다.
김 씨는 "명동 일대에 빈방이 넘쳐난다는 소문이 번지면 이미지가 추락할까봐 다들 쉬쉬하고 있지만 실제 상황은 그야말로 참담한 수준"이라며 "우후죽순으로 비즈니스호텔이들어서면서 그나마 소규로 운영하고 있는 우리 같은 업체들은 하나 둘 씩 문을 닫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고 귀뜸했다.
◇비즈니스호텔 바로 앞에 위치한 환전소는 약 두시간이 지나도 드나드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사진=김수경 기자)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본인 관광객 감소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비즈니스호텔 업계는 다양한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가격인하는 물론 일본인 위주의 영업을 펼치던 것에서 벗어나 동남아, 유럽등으로 고객
층을 넓히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행사들이 아예 노골적으로 가격덤핑을 요구하는데다 주변에서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내리다보니 어쩔수 없이 이에 동참하는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국이나 동남아 관광객들이 늘어난다 해도 워낙 일본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비즈니스호텔의 공실대란 사태를 해결하기 쉽지는 않을것으로 보인다"며 "비즈니스호텔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을 밟는 구도로 진행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