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에너지가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SK에너지는 SK이노베이션의 5개 자회사 가운데 정유사업을 담당한다.
박봉균 SK에너지 사장(사진)은 지난 27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에너지업계 신년회 직후 <뉴스토마토> 기자와 만나 "미국산 원유를 우리나라에 들여오는 방안을 다각도로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
박 사장은 "미국 내에서 셰일가스와 타이트 오일이 본격 생산되면서 미국 내 원유 가격이 (국제유가에 비해) 10~20달러가량 낮다"면서 원가 절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SK에너지는 현재 콘덴세이트(초경질원유) 도입을 적극 추진 중이다. 콘덴세이트는 천연가스에서 나오는 휘발성 액체 탄화수소로, 석유화학제품의 기초원료가 되는 나프타를 생산한다. 정유사가 값싼 콘덴세이트 수입처를 확보할 경우 이를 가공해 석유화학 업체들에게 나프타로 판매할 수 있게 된다. SK에너지 입장에서는 또 다른 수익처가 확보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다. 파라자일렌(PX) 사업을 하는 SK인천석유화학도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SK 측은 기대하고 있다. PX는 콘덴세이트를 정제해 생산한 나프타를 다시 분해해 만드는 석유화학 원료로, 미국산 콘덴세이트가 도입될 경우 원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SK에너지가 미국산 원유 도입 검토에 나선 것은 원료 다변화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 내 원유 자급률이 높아지고 있는 수급 환경에 맞춰 중동에 쏠려있던 원유 도입 비중을 미국으로 분산시키겠다는 의도다.
원료 다변화 전략의 배경에는 미국발 셰일가스 열풍이 자리하고 있다. 미국이 셰일가스와 타이트오일(셰일가스층에서 나오는 경질유) 생산에 본격 나서면서 지난 2012년 타이트오일을 포함한 원유 생산량이 수입량을 추월했다. 여기에 미국 내 원유 자급률은 지난해 2월 50%를 돌파하며 자력기반을 구축했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 내에서도 원유 수출 허용에 대한 공방이 뜨거워지고 있다. 미국은 현재 에너지 안보를 명분으로 원유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에너지 자급률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자 원유 수출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관련업계를 중심으로 점점 힘을 얻고 있다.
아울러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들을 대상으로 천연가스 수출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는 원유 수출 금지 제재도 차츰 완화해 갈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SK에너지가 미국산 원유 도입을 검토하는 것은 이러한 미국 내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미국 내에서 원유 수출을 반대하는 정유사들의 극심한 반발과 석유제품 가격 인상을 우려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아 향후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는 정치권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따라서 수출 금지 해제가 전면화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SK에너지가 원유 대신 콘덴세이트에 주목하는 이유는 미국이 원유 수출을 단계적으로 허용할 경우 컨덴세이트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콘덴세이트는 원유와 석유제품의 중간 단계에 있어 업계 내에서도 분류 기준이 모호한 것으로 평가된다.
SK에너지 관계자는 "미국산 원유 도입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천연가스 수출이 허용된 분위기를 감안하면 컨덴세이트 수출에 대한 제재도 곧 풀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규제 완화에 대비해 선제 대응 차원에서 컨덴세이트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SK의 움직임이 빨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