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연초부터 정보기술(IT)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새해 벽두부터 업계를 뒤흔든 주역은 중국의 레노버다. 최근 레노버는 구글이 소유했던 모토로라 모바일 부문을 전격 인수하며 단숨에 모바일 시장 톱3에 올랐다.
인수와 동시에 삼성전자와 애플에 이어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3위로 올라섰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곳은 LG전자다. 지난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5위이던 레노버가 모토로라 인수로 인해 3위로 도약하면서 4위던 LG전자를 5위로 밀어냈다. 모욕이다.
무엇보다 이번 인수에 주목하는 이유는 레노버가 과거 PC 부문을 인수한 후 보여준 저력에 있다. 지난 2005년 IBM PC 부문을 인수한 뒤 컴퓨터 시장 점유율 7%에서 지난해 17.7%까지 끌어올리며 PC 부문 세계 1위에 올랐다.
◇레노버 PC(사진=레노버 홈페이지)
레노버가 PC에 이어 스마트폰에서도 세를 확장하며 애플·삼성과의 직접 경쟁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양위안칭 레노버 최고경영자(CEO)도 야욕을 감추지 않았다. 인터뷰를 통해 1억대의 스마트폰을 판매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삼성과 애플을 뛰어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럼에도 현재 삼성전자와 애플의 시장 지배력이 절대적인 만큼 당장 업계 판도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다만, 레노버가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중저가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할 경우 영향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매각에서 눈여겨 볼 부문은 '알짜'라고 할 수 있는 통신과 스마트폰 관련 특허는 구글에 남았다는 점이다. 레노버가 모토로라를 29억1000만달러라는 헐값에 인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구글이 막대한 손해를 감내하고 매각했다는 섣부른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특허를 고려하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모토로라 인수 소식이 전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레노버가 일본기업 소니와 PC 합작사 설립을 고려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니는 지난 2일 공식 성명을 통해 "레노버와 PC 사업 합작사를 설립한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며 "해외 PC 사업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태블릿PC가 대중화된 이후 소니는 PC 시장 침체로 고전 중이다. 소니의 공식 부인에도 불구하고 레노버와 합작설이 여전히 힘을 얻고 있는 이유다.
한때 IT업계 왕좌를 차지했던 소니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로부터 신용등급이 'Baa3'에서 투기등급인 'Ba1'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PC를 비롯한 전 사업 부문의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무디스는 "소니의 TV와 PC 사업 분야가 난관에 부딪혔다"며 "TV·PC·휴대폰·디지털카메라 등 가전제품 분야에서 수익 하락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혹평했다.
소니의 신용도가 투기등급으로 내려간 것은 지난 2012년 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이 회사 신용도를 정크 수준인 'BB-'로 세 단계 낮추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한 데 이어 두 번째다.
이 같은 신용등급 강등은 엔저를 바탕으로 2012년 5년 만에 흑자로 돌아서며 재기 움직임을 보이던 소니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외 신용도 하락은 브랜드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소니와 경쟁하고 있는 회사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특허 제휴도 활발하다. 삼성전자는 구글과 향후 10년간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갈수록 확대되는 글로벌 특허 소송에 대한 위험을 줄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는 2년 간 특허 분쟁을 벌이던 에릭슨과도 특허권 라이선스 연장에 전격 합의했다. 일각에서는 애플을 견제하기 위한 동맹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IT업계 최대 먹거리였던 스마트폰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태블릿PC 등 새로운 디바이스의 등장으로 기존 PC와 데스크톱 등은 위기를 맞았다"면서 "최근 일고 있는 업계 변화는 생태계가 조성되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