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진욱기자] 동유럽 위기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은 24일(현지시간) 동유럽 부실로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위기가 관측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먼저 위기를 맞고 있는 곳은 미국이다.
동유럽 호황기를 이끌었던 폴란드와 헝가리 등이 위기에 빠짐에 따라 미국이 구축한 글로벌 금융시스템이 부메랑이 되어 미국의 목을 조르고 있다.
유럽 시장에서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자금을 모으기 위해 미국 자산을 팔고 있고 이런 추세가 미국 주식시장에 악재가 되고 있다.
지난주 월가는 동유럽 대출이 많은 서구 은행들의 부실 가능성을 제기한 무디스의 경고 이후 혼란에 빠졌다.
케네스 로고프 전 국제통화기금(IMF) 수석연구원은 동유럽 위기를 '도미노효과'에 비유하면서 "글로벌 신용 시장은 하나로 연결돼 있어 동유럽 위기가 뉴욕시 채권 가치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 역시 동유럽 위기로 신음하고 있다.
유럽 내 경제 대국인 영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이 이미 경기침체에 진입했다.
더 큰 문제는 은행과 연기금, 보험회사 등 서유럽의 대형 투자기관들이 동유럽에 많은 자금을 대출해 준 상태라는 점이다.
이번 위기로 동유럽 경제가 붕괴되면 동유럽 대출 비중이 높은 서유럽 은행들의 추가 부실은 피할 수 없고 결국 유럽 전체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로버트 브루스카 FAO 연구원은 "동유럽은 유럽의 서브프라임"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최근 많은 서유럽 은행들이 동유럽 지역의 대출을 줄이고 있다.
로고프 전 IMF 연구원은 "위기의 여파가 유럽을 벗어났으며 빠르게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서유럽 은행들의 대출에 의지해 성장해 온 동유럽 국가들의 어려움은 향후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미 세계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입은 동유럽 경제는 지난해 3.2%의 평균 성장률을 기록해 지난 2007년의 5.4%에 비해 40%가량 감소했다.
올해 예상 경제성장률은 0.4%다.
이에 대해 찰스 콜린스 IMF 리서치부문 차장은 "그나마 이마저도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위기로 최근 동유럽 국가들의 통화 가치는 폭락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최고를 기록했던 폴란드의 즐로티화는 최근 유로화 대비 48% 하락했다.
헝가리의 포린트화와 체코의 크로나화 역시 유로화 대비 각각 30%와 21% 추락했다.
이에 따라 지난 23일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는 공동성명을 통해 향후 자국 통화 방어를 위해 네 나라가 협력할 것임을 밝히는 등 적극적 행보에 나서고 있지만 당분간 서구 은행들의 자금 대출 기피는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동유럽 내에서 사업을 진행 중인 기업들의 고통도 치솟고 있다.
2007년 동유럽과 러시아에서 호조를 보였던 제너럴모터스(GM)의 평균판매량을 지난해 말 전년 대비 57% 추락했다.
이런 가운데 유럽 각국의 사회 혼란도 가중돼 긴축재정을 위해 지출을 줄이고 공공서비스를 축소한 나라들은 격렬한 반(反)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편 최근 위기로 IMF의 자금 역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몇 달간 우크라이나와 헝가리, 라트비아, 아이슬란드를 지원한 IMF는 추가 자금 마련에 고심 중이다.
스트로스-칸 IMF 총재는 향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나라들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장 클로드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2년 전만해도 IMF가 더 이상 신흥 시장 국가들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이 같은 평가는 지금 철저한 오판이었음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파이낸셜히스토리의 존슨 연구원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을 언급하며 "세계 경제가 결국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겠지만 꽤 오랜 시간 미국과 유럽의 저성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존슨 연구원은 "이번 금융 위기의 진원지는 미국이지만 미국 혼자 모든 비난의 책임을 질 수는 없다"며 "다이너마이트에 불이 붙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이 집안에 인화물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향후 더 큰 위기가 잠재 돼 있음을 시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