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영택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모든 계열사 등기이사직에서 사퇴한 데 이어 그룹 ‘회장’직에서도 물러난다. 모든 직책을 내려놓고, 대주주로만 남게 된다.
‘백의종군’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향후 가석방과 특별사면 등을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다.
SK그룹 관계자는 5일 "최 회장이 최근 등기이사직 사퇴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회장’직도 사퇴한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최 회장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도의적 책임을 진다”면서 ㈜SK, SK이노베이션, SK하이닉스, SK C&C 등 지주사를 포함해 주요 계열사의 등기이사에서 물러났다.
'회장'직은 상징적 의미다. 우리나라 기업문화와 지배구조를 고려할 때 회장은 곧 해당기업이다. 그룹의 정점에 위치한 회장직에서 내려오면서 일반 민간인으로 스스로 신분을 격하했다.
이는 곧 징역 4년의 실형 확정에 대한 깊은 반성과 함께 향후 가석방 또는 특별사면을 위한 사전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대통령이 행사하는 사면의 경우 재벌그룹 회장 신분보다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반성하는 일반인 신분이 명분 측면에서도 여론의 동의를 이끌기 쉽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1년여의 구속기간을 제외한 남은 형기 2년9개월을 영어의 몸으로 보내야 한다.
전례도 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2007년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으로 2008년 4월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또 그룹의 컨트롤타워이지 비서실인 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을 전격 해체하면서 대대적인 경영쇄신과 함께 반성의 의미를 더했다.
이 회장은 2009년 8월 형사처벌을 받았으나,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이듬해 3월 경영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 회장 1인을 사면하는 사상 초유의 결단이었다.
최 회장 역시 회장직마저 내려놓으면서 마지막 남은 법적 선처에 기대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가석방은 형량의 3분의 1을 복역한 수형자의 수감태도와 반성의 기미 등을 살펴본 뒤 풀어주는 제도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법정 구속됐기 때문에 100일 정도만 더 복역하면 가석방을 신청할 수 있는 자격요건을 갖추게 된다.
이와 함께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회적 지도층에 대한 엄벌 의지를 천명했다지만 최근 재계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가능성마저 전혀 닫히지는 않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 기류다.
한편 앞서 대법원까지 가는 사투 끝에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계열사 등기이사직은 사퇴했지만 회장직은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장기공백에 따른 후유증을 막겠다는 의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