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밥상에서 'made in Korea'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중국산 등 수입 농산물 탓에 밥상에서 설 자리를 잃는 것도 모자라 원산지를 속여 국산임을 가장하는 먹거리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국내 농가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산 농산물에 대한 신뢰까지 잃게 만드는 농산물 원산지 표시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13일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등에 문의한 결과, 지난해 농식품 원산지표시 위반 적발 건수는 총 4443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의 4642건에 비해 4.3% 줄었지만 원산지를 속인 업소는 2902곳으로 전년의 2700여개소보다 6.3% 늘어났다.
현재 정부는 농산물 원산지를 속인 사실이 적발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고 있다. 하지만 매년 원산지 위반 건수는 4000건 이상일 정도로 원산지 위반이 척결되기는커녕 정부의 단속을 비웃듯 여전히 성행 중이다.
◇재래시장(왼쪽)과 대형마트(오른쪽)에 진열된 농산물(사진=뉴스토마토)
중국산이나 수입산을 국내산으로 둔갑시키는 행위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처음부터 수입산을 받아 놓고 원산지를 표시하는 팻말이나 진열대에는 버젓이 국산임을 내세워 소비자를 속이는 것. 국산과 수입산 구분이 어려운 소비자는 깜빡 속을 수밖에 없다.
또 다른 방법은 일명 '포대갈이'. 수입 농산물을 받아놓고 유통 과정에서 국산으로 속이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2일 충북 제천경찰서는 중국과 인도, 수단 등에서 수입한 참깨와 들깨 50톤을 농협 포대에 넣어 전국 70여개 매장에 납품한 일당을 체포하기도 했다.
원산지를 속이는 행위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내 농가를 더욱 위기로 내몬다.
수입 농산물에 비해 약품과 방부제 처리를 덜 해서 한국인의 몸에 더 좋다고 알려진 국산 농산물은수입산보다 가격이 비싸게 팔리고 있다. 하지만 국산으로 둔갑한 수입산과 경쟁하면서 국산 농가들은 수익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원산지 위반은 국산 농산물에 대한 신뢰도까지 떨어트린다. 국산인 줄 알고 샀다가 수입산인 것을 알게된 소비자는 다시는 국산에 대한 원산지를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산과 중국산 농산물 비교(사진=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이에 원산지 위반에 대한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재 원산지 표시를 위반하면 7년 이하나 1억원의 벌금에 처하지만 실제로 원산지를 속여 챙기는 이득에 비하면 처벌 수위가 낮다는 것이다. 12일 포대갈이를 했다가 제천경찰서에 체포된 일당도 지금까지 10억원을 벌었지만 이들이 낼 벌금은 겨우 1억원 수준.
또 지난해 기준 4443건의 원산지 위반 가운데 형사입건은 2701건(60.7%), 고발은 201건(4.5%)에 불과했다. 현행 '농수산물의 원산지표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농산물 원산지 위반은 중대한 범죄만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는 셈.
특히 각종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이 속도를 내면서 앞으로 농산물 수입이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원산지 표시제도와 단속체계가 부실하면 단순히 국산으로 둔갑한 수입산이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국민 건강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수입 농산물 유통은 국가의 근간인 식량체계와 우리 농산물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앞으로 각종 FTA로 수입산이 밀물 듯이 밀려올 텐데 정부는 아무 대책이 없고 유통된 농산물을 추적할 방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원산지 표시 위반행위에 대한 처리 절차(사진=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이에 최근 농림부와 해양부는 농수산물 원산지 표시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상습적으로 원산지를 속이면 형사처벌 외에 과징금을 부과하고 단속인원을 늘리는 한편 가공식품은 원료 원산지 표시 수를 확대하는 등 수입산 표시기준을 강화하겠다는 것.
안용덕 농림부 소비정책과장은 "소비자 요구와 시대 변화에 대응한 원산지 표시제도 개선으로 공정한 유통질서를 세우겠다"며 "올해 중으로 원산지 관련 법규를 개정하고 농림부와 해양부, 관련 식품업계, 소비자단체 간 협업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