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우리나라 농업규모가 세계 17위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과 인도, 미국, 브라질 등 규모의 경제를 통한 농업이 가능한 국가와 비교하면 성적이 나쁘지 않은 상황. 그러나 외형적인 모습과 달리 안을 보면 '빛 좋은 개살구'라는 지적이다. 농지면적과 농업인구가 매년 급감하는데다 농가부채는 사상 최대치에 육박하는 등 내실은 엉망이기 때문이다.
20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낸 '통계로 본 세계 속의 한국농업' 보고서를 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 농림어업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268억7700만달러로 세계 17위를 기록했고, 총 GDP(1조1144억7200만달러)와 비교하면 2.7%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주요국 농림어업 국내총생산(GDP) 현황(자료=한국농촌경제연구원)
우리나라의 농가인구가 291만명으로 농업규모가 비슷한 필리핀(285억달러)의 10분의1 수준이고 우리보다 농업규모가 큰 중국, 인도, 미국 일본 등은 국토가 넓고 인구가 많아 규모의 경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농업의 생산성이 나쁘지 않다는 분석이다.
특히 배추(304만9000톤, 세계 4위)와 마늘(29만5000톤, 4위), 딸기(17만2000톤, 8위), 시금치(10만5000톤, 8위), 귤(68만톤, 10위) 등의 작물은 우리나라가 주요 생산국에 이름을 올렸다. 이 가운데 파(48만2000톤, 3위)는 우리가 세계 생산량의 11%를 차지했다.
이처럼 외형적 모습만 보면 좁은 국토와 적은 농업인구, 부족한 농업 인프라에 비해 우리나라 농업이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상태.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다르다.
우선 경지면적이 급감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8년 175만9000㏊였던 경지면적은 2011년에 169만8000㏊로 줄었다. 같은 기간 국토면적이 998만3000㏊에서 1001만5000㏊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농지면적 감소 폭은 더 커진다.
농가인구도 2009년 311만명에서 2012년 291만명으로 줄어 농업인 300만명 선이 무너졌다. 전체 가구 중 농가 비중도 2008년 6.6%였지만 2012년에는 5.8%를 기록했다.
◇대형유통 매장에 진열된 국산 농산물(사진=뉴스토마토)
열악한 농가사정은 소득에서도 드러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2년 농가당 부채는 2726만원으로 1992년(568만원)보다 380%나 늘었다. 이를 전체 농가로 계산하면 31조원 수준. 도시근로자 가구 대비 농가소득은 57.6%로 1992년(89.1%)보다 30%나 떨어졌다.
국가별로는 우리의 농업 생산성이 나쁘지 않은데 국내 농업은 왜 갈수록 어려워질까.
전문가들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농가의 사정을 첫째 원인으로 꼽는다. 기업농보다 영세농이 많고 농업을 위한 경비지출 규모가 크다 보니 백날 농사를 지어도 소득이 오르기는커녕 고정비율 지출 때문에 더욱 곤궁한 생활에 처한다는 것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2년 기준 농지면적이 1㏊ 미만인 농가는 전체 농가의 66.1%였다. 작은 밭이나 논을 지고 농사를 짓는 농업인이 대부분인 것. 또 전체 농가의 총수입 중 농업소득은 33.1%, 농업경영비는 64.9%로 나타나 경비가 소득의 2배나 됐다.
농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가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 것"이라며 "2012년 이후 국제유가와 곡물값이 오르면서 경영비가 상승했고 농업이 점차 자본재 의존형으로 바뀌며 고용노임과 중간재 투입에 비용을 많이 쓰는 구조가 됐다"고 말했다.
◇한-미 FTA 발효 후 우리나라로 수입된 미국산 농산물(사진=뉴스토마토)
배추와 파 등 일부 품목에서 우리가 주요 생산국이기는 하지만 농업규모 자체가 국내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고 수출보다 수입이 많은 것도 문제라는 분석이다.
2012년 우리나라 총 GDP 대비 농업규모는 2.7%로 이는 중국(10.0%)은 물론 필리핀(12.7%), 베트남(20.1%)보다도 적다. 또 2011년 우리나라의 농업 수출액은 51억1700만달러지만 수입은 234억3300만달러를 기록해 188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우리나라 농가당 농업보조금은 한해 겨우 170만원 수준으로 이는 농업 총생산 대비 5.6%밖에 안 돼 일본(13.1%)이나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다"며 "정부가 각종 자유무역협정(FTA)에만 신경을 쓰고 농가의 소득을 보전하고 농업을 보호할 대책은 하나도 마련해 놓지 않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