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총도 연봉공개도 '몰아서'..치열한 눈치작전

"31일 장 마감 후 순차 공개"

입력 : 2014-03-31 오후 4:00:00
[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기업들의 눈치작전이 치열하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주주총회를 개최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은 기업들이 이번에는 등기이사의 연봉을 같은 날 일제히 공개한다.
 
한 기업에 집중되는 관심을 분산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이 같은 일괄 공개가 오히려 관심을 증폭시키는 역효과도 발생하고 있어 기업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다수 기업 31일 등기임원 연봉 일괄 공개
 
지난해 11월29일부터 시행된 자본시장법 개정법률에 따라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등기임원이 있는 기업은 사업보고서에 해당 임원의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기업경영성과 평가업체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500대 기업 중 등기임원 평균연봉이 5억원을 넘는 곳은 176곳이다. 이 가운데 대주주가 등기이사로 올라 있는 기업은 67곳( 57.3%)이다.
 
삼성에버랜드와 LG디스플레이(034220)는 일찌감치 연봉을 공개했다. 각각 김봉영 사장과 한상범 사장이 18억6700만원, 11억5200만원을 받는다고 공시했다.
 
GS(078930)그룹도 허창수 회장의 연봉을 밝혔다. GS건설(006360)로부터 지난해 17억27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42억410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삼성·SK(003600)·LG(003550)·CJ(001040)·효성(004800) 등 대부분의 재벌그룹들은 사업보고서 제출 마지막 날인 31일 공개를 예고했다. 고액 연봉에 대한 비난 여론 등을 고려해 기업들에 대한 관심을 분산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서울 사초사옥 다목적홀에서 주주·기관투자자 등 4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주주총회를 개최했다.(사진=삼성전자)
 
주주총회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3월 둘째주 주총을 여는 133개 기업 중 116개(59.6%)사가 금요일에 집중됐다. 셋째주와 넷째주에도 각각 87.2%, 88.9%가 금요일에 주총을 열었다. 이른바 슈퍼 주총데이로 불렸다.
 
여러 기업의 주식을 조금씩 보유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경우, 한날 한시 주총이 열리는 탓에 한곳을 선택해서 가야만 한다. 그만큼 소액주주들의 주주권한 행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기업들이 경영진들의 구상대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이 같은 관행이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등기임원의 연봉 공개는 국민 정서를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게 기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반(反)기업 정서가 만연한 가운데 기업의 임원이 각각 얼마의 연봉을 받는지 공개되면 상대적 박탈감을 자극, 여론이 냉랭해 질 것이란 우려다.  
 
더불어 임원들끼리도 서로 알지 못했던 연봉 수준을 알게 되면서 사내 위화감이 조성되고 노사 갈등으로 번질지조차 걱정 대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등기임원이 받는 돈이 결코 국민들이 보기에 적지 않을 것"이라며 "여러 기업이 동시에 공개하면 특정 기업에만 여론이 쏠리는 일이 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먼저 공개하거나, 등기에사에서 내려오거나
   
모든 기업 총수가 연봉을 공개하는 것은 아니다. 등기 임원으로 등록돼 있지 않으면 연봉을 공개할 의무가 없다.
  
일부 그룹 총수들이 등기 임원직에서 물러나는 것을 두고 연봉 공개를 피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책임경영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정용진 신세계(004170) 부회장과 담철곤 오리온(001800) 회장 등이 등기 임원직을 내려놨다. 
 
역으로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등기이사로 복귀했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020560)·금호산업(002990)·금호타이어(073240)의 대표이사로 돌아온 것. 올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졸업과 함께 경영일선에 돌아온 그를 두고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화 회장의 견제 때문으로 보는 시선이 짙다.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연봉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그룹 오너 일가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만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다. 단 이건희 회장의 연봉은 0원이다.
 
◇'총수 리스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가장 고민이 많은 곳은 총수들이 재판을 받고 등기임원에서 물러난 기업들이다.
 
SK는 최태원 회장이 대법원에서 실형 확정 판결을 받으면서 SK(003600), SK하이닉스(000660), SK이노베이션(096770), SK C&C(034730) 등 4개사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났다. 지난해에는 등기임원으로 등재돼 있었기 때문에 사업보고서에는 최 회장이 받은 연봉이 기재된다. 한화(000880)그룹과 CJ그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왼쪽부터)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사진=뉴스토마토 DB)
 
대기업 한 관계자는 "등기임원에서 물러났으나 몇 억원씩 받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국민정서가 더 악화될 것 같아 조심스럽다"며 말을 아꼈다.
 
기업들은 등기임원의 연봉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지 말아달라는 입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등기임원 연봉은 결코 비난을 살 만큼 높지 않다"고 반박했다.
 
실제 CEO스코어가 포춘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의 2011~2012년 경영진 보수를 조사한 결과, 매출 기준 미국 톱 30의 주요 집행 임원 161명의 평균 연봉은 약 140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상위 5개 기업인 삼성·SK·현대차·포스코·현대중공업보다 5.2배 높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연봉을 몇 억 받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그만큼의 연봉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봐달라"라면서 "글로벌 어느 기업이고 간에 성과를 낸 만큼 보상을 하는 게 원칙"이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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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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