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기 위축 등의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유독 '코리아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
5일 금융당국과 금융계 등에 따르면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글로벌 위기 속에서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는 것은 외국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은 국내 금융시장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또 금융기관들의 무리한 영업으로 인한 버블(거품) 양산과 외환위기 경험, 우리 정부의 안이한 대처 등도 불안감을 키운 요인으로 꼽혔다.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단기 외채 축소, 타국과의 통화스와프 확대 등을 주문하면서 국내 자본의 힘을 키우고 국제적인 협력과 홍보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금융시장, 외국인 손안에"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다른 신흥국에 비해 외국자본과 외국인투자자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을 꼽았다.
주식시장의 경우 1992년 개방 이래 외국인투자자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가 보유한 주식의 시가총액도 3일 기준 151조 원으로 전체의 28.6%에 달했다. 투자비중이나 투자액으로 보면 신흥국가 중에서 최상위권이다.
실제 외국인투자자들이 유가증권시장에서 지난 달 10일부터 4일까지 2조7천억 원 가량 순매도하자 코스피지수는 12% 가량 하락했다.
또 국내 외환시장은 외국인투자자들이 쉽게 이익을 챙기고 나갈 수 있을 정도로 소규모라는 점이 단점으로 꼽혔다. 국제결제은행(BIS)이 2007년 4월 전세계 5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이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0.8%로 국가별 순위 17위에 그쳤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은 "동유럽을 제외하고 다른 주요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단기외채 규모가 크고 과거 외환위기를 경험했다는 점이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와 상승 작용을 일으켜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의 배민근 연구위원은 "한국의 자본시장이 자유화되면서 인프라에 비해 자본유입이 크게 늘어나 리스크가 커졌다"며 "이 과정에서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 금융기관, 거품 키웠다
전문가들은 또 최근 3~4년 간 국내 금융기관들의 외형확대 경쟁으로 거품이 발생한 점, 기축통화가 아닌 자국 통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점 등도 불안감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했다.
대다수 신흥시장 국가들은 달러를 들여와 원화로 운용하기 때문에 부채와 자산 간 통화의 불일치 문제를 안고 있다. 따라서 환율이 조금만 상승해도 금융기관의 외채부담은 커지는 반면 자산의 가치는 떨어지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가 순식간에 부도 위험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국내 은행들은 최근 몇 년 간 외채를 들여와 예금보다 많은 대출을 함으로써 위험을 키웠다는 지적이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은행들이 유동성 관리에 실패하고 부동산 등의 거품을 키운 상황에서 해외 충격까지 겹쳐 위기감이 확대됐다"며 "구조조정 등을 통해 부실을 걷어내지 않으면 이번 위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 외채 장기화, 통화스와프 확대 필요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한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우선 단기외채를 줄이는 한편 미국 등 다른 나라와의 통화스와프를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권 실장은 "은행들은 단기보다 장기로 외화자금을 조달해야 하며 필요하면 보유 자산도 과감하게 팔아야 한다"며 "정부는 통화스와프를 확대하거나 영구적으로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또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경상수지 기조를 유지하고, 국내 연기금과 기관투자가 중심의 금융자본을 키워 국내 증시에서의 외국인투자자 비중을 낮추고 외환시장 규모도 경제규모에 맞게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내부적으로 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작업을 통해 금융권의 부실을 털어내고 국가의 대외 홍보 활동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금융연구원 신용상 개방.거시경제실장은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 여건이 나빠져 시장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고 무역수지를 확대하기도 쉽지 않은 만큼 홍보를 활성화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