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세정책)④쓸 돈부터 정하고 짜맞춰 걷는다

입력 : 2014-04-07 오후 1:55:2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가계부를 작성할 때에는 우선 수입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수입이 정해지면 거기에 맞게 지출계획을 세워야 적자를 면하기 때문.
 
일개 가정의 가계부조차 그러한데 우리나라 국가재정의 운용은 언젠가부터 그와 정반대로 가고 있다. 굳이 따지자면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부터다.
 
지출중심으로 예산을 짜다보니 수입은 지출을 맞추기 위한 수단이 됐다.
 
◇글 싣는 순서
◇이상한 균형재정과 이상한 복지공약
 
지난해 우리 국민들은 세입과 세출의 심각한 부조화를 지켜봐야 했다.
 
지난해 4월 있었던 무려 17조3000억원 규모의 유래 없는 추가경정예산안(추경) 편성이 그것이다. 추경은 국가재정법상 경기침체나 대량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 대내외여건의 중대한 변화가 있을 때에만 편성할 수 있도록 했지만, 지난해에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추경이 편성됐다.
 
정부는 경기가 어렵다면서 경기부양을 위해 재정을 풀어야 한다는 명목을 앞세웠지만, 그보다 큰 추경목적은 12조원이 넘는 세입결손을 메우는 일이었다.
 
당초 2013년에 벌어들일 것이라고 예상했던 세입보다 12조원이 덜 들어오게 생겼으니 국회를 통과한 세입예산에서 12조원을 삭감해 달라는 요구였다. 여기에 경기부양용으로 5조원이 넘는 세출증액도 추가됐다.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은 "작년에 통과된 올해 세입예산에서 상당한 '과다계상'이 있다. 세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세입감경 추경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과다계상해서 예산을 편성했고, 그것을 국회가 비판과 조정없이 용인했다는 지적이었다. 사실 예산편성 과정을 보면 그 정부가 그 정부이고, 그 공무원이 그 공무원이지만 모든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잘못인 것으로 치부됐다.
 
과다계상은 '균형재정'이라는 지키지 못할 목표를 지켜질 현실처럼 만들기 위해 재정상황을 포장하는데 활용됐다.
 
ⓒNews1
 
이명박 정부는 당초 임기 내 균형재정을 목표로 했지만, 대규모 감세와 세계경제위기의 영향으로 균형재정의 목표를 2013년으로 미뤘다. 다음 정부 첫해인 2013년 예산은 이명박 정부에서 편성했고, 정책목표인 균형재정을 위해 무리한 가정들이 예산안에 섞여 들어갔다.
 
2013년 세입의 근거가 되는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4%까지(실제 3% 성장) 부풀려졌고, 국세수입과 공기업 매각 등 세외수입은 거둬들이기 불가능한 항목까지 당연히 들어올 항목으로 세입계획에 포함됐다.
 
억지 균형재정을 위해 과다계상의 꼼수가 동원됐고, 그 결과 초유의 세입경정추경이 편성된 것.
 
문제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과다계상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공약을 빠짐 없이 이행하겠다고 밝히면서도 관련 재정을 조달하는 계획은 모호하게 설정하고 있다.
 
이른바 '증세 없는 세원확보'라는 원칙이 문제의 핵심이다.
 
증세는 하지 않겠다면서도 세입은 확보하겠다는 이중적인 자세로 재정을 운영하다 보니 억지 예산편성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임기말까지 중앙정부 공약이행에 134조8000억원, 지역공약 이행에 124조원이 소요된다는 정부의 공약가계부는 임기내 평균 4% 성장과 고용률 70% 달성을 전제로 하고 있다.
 
사실상 선진국형 저성장 국면에 접어든 우리나라가 향후 4%성장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평가된다.
 
현 정부가 2017년에 달성하겠다고 수정한 균형재정 목표 역시 이명박 정부와 마찬가지로 과다계상을 하지 않고서는 달성이 어려울 가능성이 높다.
 
◇ 지출에 힘 실리며 휘둘리는 세제실
 
정부가 국가재정운용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이행하면서도 과다계상이라는 편법을 동원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 조직의 변화가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기획재정부 장관인 박재완 전 장관은 2012년, 부처내 조직의 상당한 변화를 꾀했다. 이른바 '화학적 융합인사'라는 방식으로 예산실과 세제실의 인력을 사실상 강제로 섞는 인사를 단행한 것.<관련기사 (위기의 조세정책)②초년생 사무관에 맡겨진 200조원>
 
예산과 세제는 같은 부처에 있으면서도 사실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는 업무다.
 
기재부 예산실은 돈을 쓸 곳을 결정하고, 세제실은 돈을 걷을 곳을 결정한다. 한정된 세수입 환경에서 세제실은 보수적으로 재정을 지키려 하고, 여기저기 지출요구를 감내해야 하는 예산실은 어떻게든 지출을 용이하게 하려하기 때문에 둘은 매년 예산안 편성때마다 갈등을 겪는다.
 
치열하게 논리대결을 펼쳐서 접점을 찾고, 그 결과가 1년치 예산안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과거 기획·예산을 쥔 경제기획원(EPB)과 금융·세제를 쥔 재무부가 정부 조직개편과정에서 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일정한 거리두기가 필요한 업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이 둘을 합친 기획재정부가 부처 통합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실국별 융합인사를 진행한 것이다.
 
세제실에는 예산실 출신 사무관과 과장이, 예산실에는 세제실 출신 사무관과 과장이 섞였다. 서로간에 업무이해를 높이는데는 성공했지만, 경쟁관계를 통해 균형있는 결정이 내려져야 할 재정운용은 예산실쪽에 더 무게가 실렸다.
 
지출을 계획하는 곳과 수입을 계획하는 곳, 창과 방패의 융합은 창의 우위라는 필연적 결과를 낳았다.
 
특히 EPB출신의 현오석 부총리가 장관으로 앉으면서 예산실의 힘은 더욱 커졌다.
 
현 부총리는 2013년 부임하자마자 조직개편을 통해 각각 1차관과 2차관으로 나뉘어 있던 세제실과 예산실을 2차관 산하로 묶고, 30%의 필수인력을 제외한 나머지 인력을 모두 순환조치하는 인사를 실시했다.
 
각기 다른 차관 아래에서 각자의 논리를 펼쳐왔던 구조가 하나의 차관 아래서 장관에게 보고되기도 전에 이미 어느 한쪽의 논리로 정리가 되는 구조로 바뀌었다.
 
장관의 입장에선 둘이 싸우는 꼴을 보지 않고, 복잡한 고민을 하지 않고서도 손쉽게 결론을 낼 수 있는 구조다.
 
세제실장 출신의 한 전직 관료는 "예산실과 세제실이 치열하게 논리대결을 하고서도 장관앞에 가면 결국 예산실쪽으로 결론이 나는데, 둘이 섞이면서 세제실 논리는 더 힘이 빠지게 됐다. 장관 입장에선 정치권과 부처별 지출요구를 들어줘야 처신에 도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 '증세없는'의 모순이 만든 모순된 조세정책
 
힘이 실린 예산실이 쓸 곳을 먼저 정하다 보니 세제실은 세수구멍을 메우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는 신세가 됐다.
 
더군다나 대통령이 '증세 없는 세원확보'라는 가이드라인까지 설정해 놓은 상황이라 돈 나올 구멍은 더욱 좁아진 터다.
 
결국 늘상 하던 각종 비과세감면 정비와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세입확보책이 전부다. 종교인과세 등 일부 조세제도 선진화대책도 나오고 있지만 세수입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근로소득세 공제 축소 등 월급쟁이 지갑만 건드렸다가 비난세례를 받았다. 올해도 각종 비과세감면 축소를 계획하고 있지만 선거까지 껴 있어서 쉽지 않다.
 
국세청과 관세청이 총동원되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탈세자를 찾아 나섰지만 세무조사로 추징하는 것도 곧 한계를 드러냈다. 최근에는 그 와중에 '규제완화'바람까지 불어 기업에 부담이 되는 세무조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올해 세법개정안 작업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것 같다"면서 "세수는 부족한데 새로 건드릴 만한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조세정책 기조는 세출운용 면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비정상적인 결과를 가져왔다"면서 "이러한 정책기조로는 저출산·고령화·양극화를 극복할 수 없다. 건전재정을 유지하면서 재정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세부담률을 점진적으로 높이는 증세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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