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은 왜 오빠를 '간첩'으로 지목했나

법원 "국정원의 회유와 압박 못이겨"

입력 : 2014-04-25 오후 6:48:00
[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유우성씨는 여동생의 지목으로 간첩이 됐다. 여동생 가려씨는 국정원의 끊임없는 회유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오빠를 간첩으로 만들었다. 혈육의 정이 찢기는 과정이 유씨의 항소심 판결문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25일 판결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계속된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받아오던 가려씨에게 어느날 '자백하면 오빠와 같이 한국에 살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을 건넸다.
 
가려씨는 그동안 피의자 신분과 마찬가지로 영장없이 구금된 상태였다. 독방에 수감된 채 폐쇄회로(CC)TV에 일거수일투족이 공개된 지도 오래였다. 몸과 마음은 이미 지친 상태였다. 그는 결국 국정원의 회유에 넘어갔다.
 
그러나 재판부는 가려씨가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합신센터)에 불법으로 구금된 상태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보장받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받아낸 증언은 신뢰할 수 없어 증거로 쓸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있는 죄를 다 진술해서 깨끗이 털어버리면 오빠와 같이 살 수 있다'는 국정원의 회유에 여동생이 "회유에 넘어가 헛된 기대를 품고 진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려씨가 유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유씨가 보위부의 지령으로 활동하는 것을 암시한 대목도 마찬가지다.
 
'사실 그대로 훅 털어버리고 그 죄를 받고 깨끗하게 씻어 버리자', '언제까지 그렇게 힘들게 보위부에 엮여 우리 가족 힘들게 살겠니'라는 여동생이 오빠에게 쓴 편지가 증거로 제출됐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심리적 불안감 속에서 수사관의 회유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 처해 작성한 것"이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앞서 원심은 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으면서 폭행이나 협박, 가혹행위를 당했거나 세뇌 또는 회유를 받지 않은 상태서 자유롭게 진술했다고 봤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달리 판단한 것이다.
 
가려씨를 합신센터에 수용한 것은 북한이탈주민보호법에 따라 적법한 임시보호처분이라고 본 원심도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여동생이 북한이탈주민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했으나 171일이 지나서야 임시보호조치를 해제했다"며 가려씨의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 등을 부당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장없이 신병을 확보한 여동생과 유씨에 대한 수사를 진행해 위법하다는 판단도 덧붙였다.
 
재판부는 합신센터의 비민주적인 조사방식도 짚어내며, 국정원이 가려씨의 몸에 '회령 화교 유가리'라고 적힌 표찰을 붙여 합신센터 통로에 세워둔 데 대해 "불필요하게 모욕과 망신을 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법원 판결로 합신센터의 실상이 드러난 마당에, 국정원이 강압조사와 진술유도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며 이달 초 언론에 합신센터를 최초로 공개한 게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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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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