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혁의 스포츠에세이)유럽의 '역습축구'가 던지는 메시지

입력 : 2014-05-02 오후 2:43:51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최근 2주간 유럽은 점유율 축구의 몰락현상을 보였다. 공 소유시간을 중시하고 세밀한 패스로 풀어가는 축구가 아픔을 겪은 것이다.
 
이 축구의 상징 격인 바이에른 뮌헨(이하 뮌헨)과 바르셀로나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서 탈락했다.
 
◇바이에른 뮌헨의 펩 과르디올라 감독. (사진캡쳐=UEFA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그 자리는 레알 마드리드(이하 레알)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아틀레티코)가 채웠다. 두 팀은 직선적인 축구를 펼쳐 결승 티켓을 따냈다. 단번에 그라운드를 썰어내는 역습과 상대 뒤를 노리는 축구를 했다.
 
보통 역습에 6~7초 정도가 걸리면 대단히 빠른 공격이라 하는데 레알과 아틀레티코 모두 이와 엇비슷한 득점 장면을 만들었다. 세부적인 시스템은 달랐지만 수비에 중점을 두고 역습을 노리는 큰 틀은 과거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빗장수비(카테나치오)'가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지난 1일 열린 아틀레티코와 첼시의 4강 2차전에서 아드란 투란(아틀레티코)이 터뜨린 3번째 쐐기골은 인상 깊었다. 이 득점까지의 장면은 최근 그들의 기세를 압축해서 그대로 보여줬다.
 
당시 결승 진출을 위해 골이 필요했던 첼시는 공격라인을 올렸다. 그러자 오히려 아틀레티코의 장점이 더욱 살아났다. 단 한 번의 패스로 수비 뒤를 쇄도하던 후안프란에게 패스가 연결됐고 이 패스를 시작으로 골이 터졌다.
 
디에고 시메오네 아틀레티코 감독의 뚝심이 빛났다. 그는 1차전에서 첼시의 수비에 당했지만 불만을 내보이지 않고 고심을 거듭했다.
 
실제 첼시는 리버풀과 리그 경기에서도 엄청난 밀집수비를 펼쳐 이겼다. 10명의 선수들이 자신들의 골문 앞에 진을 쳤다. 경기에 진 리버풀의 브랜든 로저스 감독은 "마치 버스 두 대가 서 있는 것 같았다"고 독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경기를 본 시메오네 감독은 "감독마다 다른 전술을 인정한다"며 축구 전술에 정답은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자신들에게는 버스 세 대가 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회적으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서 아틀레티코의 힘이 나왔다고 본다. 그들은 조급해하지 않았다. 상대가 측면으로 치고 올 때는 적절히 뒤로 물러나 압박 타이밍을 기다렸다. 오히려 첼시의 역습에 재역습을 가할 기회를 엿봤다. 그 후 균열된 수비 공간을 찾아냈다. 웅크리는 듯 상대를 측면으로 유인해 공격할 틈을 스스로 만든 것이다.
  
◇최근 유럽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디에고 시메오네 감독. (사진캡쳐=UEFA 챔피언스리그 홈페이지)
 
지난달 30일 열린 레알과 뮌헨의 2차전도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경기 초반 세르히오 라모스의 골이 터졌을 때 승부는 갈렸다. 라모스는 세트피스에서 2골을 뽑아내 레알이 2-0으로 달아나는데 이바지했다.
 
뮌헨 선수들은 극도로 초조한 모습을 드러냈다. 경기 시간이 줄어들수록 그들의 불안감과 조급함은 더해갔다. 어떻게든 골을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레알은 이런 뮌헨의 '공격 앞으로'를 역습으로 완벽히 잠재웠다. 후반 15분 이후는 레알 선수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뮌헨은 점유율과 패스성공률에서 모두 레알에 앞섰으나 경기는 졌다. 그들의 장점을 모두 쏟아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승리는 내줬다.
 
가레스 베일과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역습에서 자신들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했다. 팀이 수비라인을 내리자 오히려 이 둘이 치고 나갈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 베일과 호날두는 적극적인 돌파로 뮌헨 수비수들의 간담을 서늘케 하며 마침표를 찍었다. 호날두가 터뜨린 3번째 골은 이런 역습 상황에서 약 9초 만에 터졌다.
 
축구에 정답은 없다는 명제가 새삼 증명됐다. '티키타카'의 시대가 저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흘러나오고 있는데 근거 있는 주장이다.
 
이는 K리그에도 시사점을 던진다. 유럽은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불린다. 이런 흐름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K리그 몇몇 팀들은 '티키타카'를 표방했다. 대표적으로 포항스틸러스와 수원삼성을 꼽고 싶다. 올해는 울산현대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행보는 모두 다르다. 포항은 완벽하게 녹여내 '스틸타카'라는 신조어를 2년째 실력으로 증명했다. 외국인 선수와 스타급 선수가 없는 약점을 조직력으로 승화했다. 그들은 짧은 패스를 바탕으로 간결한 볼 처리를 핵심으로 삼았다. 지난해 우승에 이어 올해도 포항은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반면 수원삼성은 조금 다르다. 과도기로 보인다. 아직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서정원 감독은 2013시즌 지휘봉을 잡은 이래 '블루타카'를 표방했다. 그러나 첫해 리그 5위에 이어 올 시즌에도 아직 뚜렷한 색을 못 내고 있다. 최근에는 긴 패스도 조금씩 구사할 것이란 얘기가 전해진다.
 
울산현대는 침체기다. 오히려 기존의 색을 버린 게 점차 어긋나는 분위기다. 올 시즌 부임한 조민국 감독은 기존 울산 축구에 세밀함을 더하려 했다. 하지만 울산은 4월 한 달 동안 1승도 못 올렸다.
 
◇레버쿠젠 동료들과 환호하고 있는 손흥민. (사진캡쳐=레버쿠젠 페이스북)
 
대표팀 입장에서도 볼 필요가 있다.다가올 6월 월드컵에서는 다양한 축구전술이 나올 것이다.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월드컵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의 대회로 꼽힌다. 이런 대회에서 기존과 다른 움직임이 생겼다는 사실은 되새겨야 할 부분이다.
 
대부분의 대표팀 선수들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나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기도 하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그들의 선수생활을 위해서도 유념해야 할 현상이다.
 
한국 대표팀은 브라질월드컵에서 러시아, 알제리, 벨기에와 묶였다. 모두 쉬운 상대가 아니다. '선 수비 후 역습' 전술을 선택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경우 손흥민을 살릴 수도 있다. 손흥민에게 역습과 공간 활용은 유리하다. 그는 최근 대표팀 선수 중 활약이 제일 좋다. 다가올 월드컵에서도 가장 기대되는 선수로 꼽힌다.
 
손흥민은 지난 4월20일 뉘른베르크와 경기에서 약 70m 가까운 드리블 돌파로 도움을 올렸다. 그는 상대의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에 가담했다가 공을 잡아 재빠르게 페널티박스까지 치고 들어갔다. 이후 반대편에서 달려 들어오는 에미르 스파히치에게 정확한 패스를 연결해 골을 도왔다.
 
역습 축구의 성공 속에서 다시 한 번 떠오른 장면이었다. 유럽 축구의 흐름과 대표팀의 상황에서 최근의 변화들은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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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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