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간첩교육, 아버지는 간첩누명 사형..국가배상

입력 : 2014-07-13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전재욱기자] 북파 간첩 교육을 받는 6살 난 아들을 구하려고 남한에 돌아온 북파 공작원 아버지. 그러나 곧바로 간첩으로 몰려 사형 선고.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반세기.
 
한국전 이후 냉전의 시대상이 빚어낸 비극에 법원이 국가의 불법행위를 인정하고 피해자에게 수억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재판장 김연하)는 심모씨(65)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3억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13일 밝혔다.
 
재판부는 심씨의 아버지가 영장없이 체포돼 불법 구금된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은 점과 사형집행 사실을 45년 동안 유족에게 숨긴 점, 심씨가 6세의 나이에 군대에서 북파공작 훈련을 받은 점을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정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육군이 당시 민간인 신분인 심씨의 아버지를 데려다 훈련시켜 북파시킨 점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당시 1955년은 남북한이 고도의 군사적 긴장관계로 대치하고 있어 국가안보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며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를 마련하는 데 상당한 재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을 인용했다.
 
육군은 민간인이던 심씨의 아버지를 훈련시켜 1955년 9월 북한에 침투시켰다. 그는 북한에서 포섭돼 1957년 10월 남파 간첩으로 돌아왔다. 곧바로 자수했으나 육군은 그를 위장간첩으로 보고 기소했다.
 
중앙고등군법회의는 1959년 12월 구 국방경비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심씨의 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판결은 선고와 동시에 확정됐다. 이 혐의를 받는 피고인은 상소권도 없었다. 사형은 1961년 집행됐다. 국가는 집행사실을 숨기고, 시신은 화장했다. 심씨는 2006년 4월 이 사실을 알았다.
 
심씨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고자 재심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북파 공작원이던 심씨의 아버지가 남파 간첩이 된 배경이 드러났다.
 
심씨는 1955년 행방이 묘연한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수소문 끝에 아버지가 근무하는 군부대를 찾았다. 그러나 부자 상봉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버지는 이미 북파된 상태였다.
 
도리어 육군은 심씨를 데려다 북파 공작원으로 길렀다. 당시 6살의 심씨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사격술을 익히고, 북한노래를 배웠다. 친척의 도움으로 구출되기까지 1년 반이 걸렸다.
 
북한에 있던 심씨의 아버지에게 이 소식이 들어갔다. 아들을 구하려면 남한에 돌아가야 했다. 길은 하나밖에 없었다. 북한에서 전향해 남파되는 것이다.
 
심씨의 아버지는 1957년 10월 돌아왔다. 아들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자수했으나 재판에 넘겨졌다. 심씨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1959년 재판을 받을 때로 기억한다. 생사도 모른 채 흐른 세월이 반세기다.
 
2012년 심씨 아버지의 재심을 맡은 재판부는 "남파간첩으로 활동할 목적으로 자수한 것이라는 공소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인권보장과 법치주의 수호라는 사법 본연의 역할과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개인적 희생을 강요한 결과에 대해 죄송하고 안타깝다"며 사법부를 대표해 사과했다.
 
◇서울중앙지법(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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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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