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은퇴' 박찬호 "야구계에 의과 애가 공존하는 것을 다시 확인했다"

입력 : 2014-07-19 오후 2:04:54
[광주=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18일 저녁 2014 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진행되는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 이날 경기 전에 예정된 '코리안특급' 박찬호(41)의 은퇴식은 그의 활약상을 담은 영상을 틀어주는 것으로 막을 열었다. 현장의 많은 야구 팬들은 영상에 주목했고 일부는 뭉클한 마음에 두 눈 주위가 촉촉히 젖어드는 모습도 발견됐다.
 
영상이 끝나자 검정 밴 한 대가 경기장에 들어왔다. 이날의 주인공인 박찬호가 승차한 밴이다. '이글스'란 글자가 선명한 한화 유니폼을 입고 밴에서 하차한 그는 자신의 은퇴식임에도 오히려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후배들은 대선배의 뜻깊은 은퇴식을 박수와 헹가래로 축하했고, 팬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박수와 함성을 보냈다.
 
시구와 은퇴식을 마친 박찬호는 경기가 진행되는 중 야구장에 마련된 인터뷰실서 공식 기자회견을 열면서 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공식 기자회견 전문.
 
◇'코리안 특급' 박찬호(41)가 1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 이스턴팀-웨스턴팀 경기에 앞서 은퇴식을 갖고 헹가래를 받고 있다. ⓒNews1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은퇴식을 치른 소감은?
 
▲솔직한 감정으로는 정말로 슬프다. 이제는 진짜 떠나는 기분이 든다. 2012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 등판하면서 나 혼자서는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상상을 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됐다. 그 뒤로 지난 20개월 동안 다시 마운드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올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해왔다. 오늘 이 자리는 공 하나만 던질 수 있는 기회였지만, 계속해서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정말 영광스럽고 내 인생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이다.
 
특히 이 자리가 후배 선수들이 나를 위해 처음 만들어준 자리라는 게 더 큰 영광이다. 그동안 후배들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오히려 후배들이 자리를 만들어줬다. 후배들이 내게 더 큰 책임감을 갖게 해준 것 같다. 야구계에 이런 의(義)과 애(愛)가 공존하고 있었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시포자로 김경문 NC 감독을 선택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가 부탁을 드렸다. 감독님은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꿈을 주셨던 분이다. 베어스의 포수로서, 공주 출신으로서. 우리 초등학교 야구장에 오셔서 캐치볼을 하신 모습이 기억이 난다. 애틀랜타에서 감독님이 지도자 연수를 받으실 때 미국에서 뵈었는데, 상당히 먼 선배님인데도 힘들어하는 내게 다정하게 용기를 주셨던 시간도 있었다.
 
그 이후 신뢰가 두터워졌고,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명성을 쌓으실 때마다 늘 존경스러웠다. 시간 될 때마다 감독님 팀을 방문해서 조언도 받았다. 존경하는 분이고 훌륭한 선배님이다. 그래서 마지막 공을 받아 달라고 부탁 드렸다. 감독님께서 '오히려 내가 더 감사하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나 역시 더 큰 존경심이 느껴졌다.
 
-2012년 11월 은퇴 기자회견 이후 20개월 만에 처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은퇴 발표 후 처음에는 훈련을 멈출 수가 없었다. 뭔가 내가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다. 오래 전 텍사스 시절 심리치료를 받을 때 박사님이 해주신 얘기가 있다. '네가 지금 아무리 힘들어도 나중에 은퇴를 하고 나면 공을 던질 기회가 없어서 더 힘들 거다'라고. 그땐 그게 이해가 안 됐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리 내일 다시 홈런을 맞고 게임이 망가질지언정 공을 다시 던질 수 있는 희망이란 게 있었으면 좋겠더라.
 
그게 뭔가 불안했고, 계속 훈련도 했다. 한화가 어려움을 겪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공을 던졌다.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치유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많은 선수 분들, 특히 경력이 화려한 분들이 은퇴 이후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그 길을 그대로 간 것 같다.
 
지금은 골프를 시작하고 다른 운동에 집중을 할 수 있게 되니 치유가 됐다. 또 지난 한 해 동안 전시회, 책 출간, 야구교실, 야구대회 등 여러 일을 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시간을 나 스스로 보냈다. 더불어 공부도 하고 있다. 떨어져서 한국 야구를 지켜보니, 선수생활 때의 느낌과 애정보다 더 커지는 느낌이다.
 
올해는 미국에 가서 아이들 키우고, 가사를 돕는 데 매진했다. 또한 앞으로 내가 한국 야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한국 야구의 발전을 진단과 더불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국 야구 발전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등의 책임감과 의무감이 큰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많은 분들이 여러가지 일로 부탁이나 의뢰가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좀 더 준비해야하지 않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좀 더 공부를 하게 됐다. 한국 야구는 계속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언젠가 위기가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야구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생각중이다.
 
꾸준하게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좀 더 다양성을 갖춰야 할 것 같다. 모두가 한국 야구를 주목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이를 위해 선수들과 많이 교류하고 있다. 이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들이 지금은 좋은 퍼포먼스로 흥행을 이끌지만, 내적으로 사회에 어떤 교류를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에 집착하는 것보다 '야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독이나 코치로서의 현장 복귀는 어떤가.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인 것 같다. 코치든 감독이든.. 사실 친정팀 한화를 보면 안타까운 부분들이 있다. 마음 같이 안 풀리는 점들이 많지 않나. 야구가 그런 것 같다. 보통으로 공부하고 준비를 해서는 정말 안 될 것 같다.
 
감독이란 꿈을 갖고 있다면 더 많은 공부와 성찰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무리 매력적이라도 아직은 내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제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따로 더 준비할 생각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따로, 다양하게 있어서, 그쪽으로 준비할 계획이다.
 
-오늘 아내와 아이들도 함께 은퇴식에 참석했다.
 
 
▲아이를 키우며 보니 아이들의 습득 능력이 굉장히 빠르다. 저희 아이들 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빨리 성장한다. 그것을 자신의 감성이나 이성에 빠르게 융화시키더라.
 
작은 아이는 아빠가 야구선수라는 것을 잘 모른다. 그냥 야구장에서 공 던지는 사람이라고 한다. 수염있고 공 던지는 사람은 다 아빠라고 그랬다. 그게 인상 깊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보다, 아이들 스스로 제가 하는 일을 보면서 나중에 어떤 길 역할을 할 것 같다.
 
딸 둘 있는게 굉장히 행운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힘들었을 때도 아이들과 시간을 같이할 수 있어서 치유가 빠르다.
 
◇박찬호가 18일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올스타전에 앞선 은퇴식에서 아내, 두 딸 등 가족과 함께 그라운드에 올라 소감을 밝히고 있다. ⓒNews1
 
-류현진(LA다저스)이 잘 하고 있다. 류현진의 요즘 활약을 보면 어떤 느낌을 받나.
 
▲아주 큰 보람을 느낀다.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해주고 있다. 내가 미국에서 뛰면서 한국 야구의 문을 열었다고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게 내게는 큰 책임감이자 부담감이었다. 항상 안주하는 게 불안하고 지켜보는 눈도 많았다.
 
지금 류현진은 한국 야구의 질을 높이는 일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류현진으로 인해) 한국 야구의 수준을 인정하고 있고, 아시아 야구의 리더 역할을 하면서 사회의 한 부분을 지켜가고 있다. 더 큰 선수가 됐다. 선배로서 고맙고 영광스럽다. 선배의 영예가 더 빛나려면 후배들의 성공과 활약이 뒤따르는 게 중요하다. 한국에서 뛰는 다른 선수들도 자신 이외에 더 많은 후배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따로 조언할 부분은 없나.
 
▲그냥 '지금 같이만 하라'고 하고 싶다.(웃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올스타 게임의 주인공은 게임이 끝난 뒤에 나와야 하는데 내가 처음부터 너무 주인공 역할을 한 것 같아서 어색해졌다. 그래도 내게는 소중한 날인 것 같다.
 
사실 친구인 홍원기 코치에게 갑자기 '후배들이 네 은퇴식을 추진하고 있다. 너 같은 선수가 이대로 사라지면 안되지 않겠느냐'고 연락을 받았을 때 무척 멋쩍었다. 그러나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굉장히 영광스러웠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자리지만, 많은 관중들과 팀의 리더들이 모인 자리. 그들 앞에서 오랫동안 상상만으로 꿈꿔왔던 순간을 맞이한 것 같다.
 
과거 미국에 간 지 3년 정도 됐을 때 루 게릭 선수의 은퇴식을 봤다. 그 때부터 '언젠가 내가 한국 리그에 가서 한국 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거였다. 또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그 마음이 더 커졌다. 그 꿈같은 일이 실현된 것이다. 이 기회를 주신 분들, 그리고 내게 성공과 성장의 기회를 주신 야구팬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이준혁 기자
이준혁기자의 다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