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서지명기자] 금융당국이 25년만에 현행 자동차보험 할인·할증제도를 손본다. 현행 사고 크기에 의한 '점수제'에서 사고 건수에 따른 '건수제'로의 변경이 골자다. 자동차 사고가 잦으면 보험료를 더 내고 무사고자에 대한 혜택을 늘린다는 의미다.
업계는 사고 예방효과가 크고 보험 선진화의 초석이될 것이라며 환영하고 있지만, 일부 소비자와 금융소비자단체에서는 보험료를 올리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자동차보험 할인·할증제도 개선 배경은
이번 자동차보험 할인·할증제도 개선은 지난 25년간 자동차 사고 상황의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1989년말 266만대 수준이었던 자동차등록대수는 2013년말 기준 1940만대로 7.3배 증가했다. 반면 자동차 1만대당 사망자수는 95% 감소했고, 물적사고 비중은 2.2배 늘었다.
지난 1989년에 도입된 현행 할인·할증제도는 자동차사고의 크기에 따라 점수를 매겨 할증하는 사고점수제다. 피해자의 상해 정도나 손해액의 크기 등 사고의 심도에 따라 0.5점부터 4점까지 할증점수를 부과해 합산했다.
◇자동차보험 사고건수제 시행방안(자료=금융감독원)
예컨대 사람이 죽거나 1급 상해의 경우 4점이 부과되는데, 사고 한 번에 4등급이 할증된다. 물적사고의 경우 할증기준금액 이하 사고는 0.5점이, 초과 사고는 1점이 할증된다.
허창언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는 "점수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만 시행하는 방식으로 지난 25년간 변화된 자동차보험 환경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금융당국은 사고의 크기보다는 사고의 건수가 사고위험을 반영한다고 설명한다.
보험개발원 분석자료에 따르면 전년도 사고건수별 집단의 사고에 의한 손해발생 위험을 분석한 결과, 사고건수가 많은 집단일수록 손해발생 위험의 상대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허 부원장보는 "사고건수가 증가하면 사고위험도 증가하며, 사고건수가 장래의 사고위험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누구에게 유리할까..제도개선 효과는
이번 개선안으로 사고건수에 따라 할증이 되면 사망사고 등 인적사고나 복합사고자는 현재보다 유리해지고, 차 사고가 잦은 사람에게는 불리하게 적용된다.
사고건수를 기준으로 할증하면 1회 사고는 2등급, 2회 사고부터는 3등급 할증된다. 1회 사고중 50만원 이하의 소액 물적사고는 1등급만 할증된다. 연간 최대 9등급까지 할증 가능하다.
자동차보험 사고현황을 살펴보면 운전자의 79.6%가 무사고이고 1건은 16.9%, 2건 이상은 3.5%로 나타났다. 1건 이상의 사고자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현행 점수제와 비교했을 때 1건 4.3%, 2건 16.4%, 3건 이상 30.0%의 할증보험료가 증가할 것으로 집계됐다.
80%에 달하는 무사고 보험가입자들의 보험료 부담이 낮아질 것이란 전망이다. 금감원은 제도변경에 따라 사고자에게 할증보험료가 증가되는 만큼 무사고자의 보험료가 평균 2.6% 인하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손해보헙협회 관계자는 "이번 제도개선안은 손해보험 선진화의 초석으로 환영한다"며 "사고를 많이 내는 사람에 대한 할증이 적용되면 사고예방효과도 클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료 더 거두려는 명분..생계형 운전자 대안 없어
금융당국의 이같은 제도개선안에 대해 일부 소비자들과 소비자금융단체는 사실상의 보험료 인상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소액 물적사고의 기준으로 삼은 50만원도 터무니 없다는 지적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보험국장은 "보험료 할증에 대한 소비자 반발을 우려해 일단 건수제로의 변경을 추진해 보험료 인상의 효과를 보려는 것"이라며 "보험료를 더 거두려는 명분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운전경력 7년차의 운전자 김 모씨는 "간단한 접촉사고로 자동차 범퍼만 갈아도 최소 50만원이 나온다"며 "보험료 할증을 염려한 소비자들의 자비처리를 유도하려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또 택시, 화물차량 등 이른바 생계형 운전자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국장은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생계형 운전자들은 수리를 안하고 다닐 수밖에 없다"며 "보험의 본질은 사고예방이 아니라 보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