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중국산 철강재가 활개를 치고 있다. 건설, 조선 등 철강을 소비하는 전방산업의 부진이 길어지면서 비용 절감을 위해 저가의 중국산을 찾는 수요처들이 늘어나면서다.
건설 현장에서 주로 사용되는 H형강이나 철근, 칼라강판 등 일부 철강재들은 이미 중국산이 국내시장 대부분을 잠식한 상황에 이르렀다. 동시에 불량재 사용으로 인한 사고 우려도 높아졌다. 가격과 품질의 반비례가 불러온 파장이다.
11일 한국철강협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국내로 수입된 철강재는 1481만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4.1% 증가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전체 수입 철강재 비중이 35.7%에 달할 정도로 내수 잠식속도가 급증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주요 철강국 중 수입재가 철강시장의 35%가 넘는 경우는 없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내 철강 산업은 생존이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서 2002년 미국이 자국 철강산업의 붕괴라는 인식 속에 전 세계를 상대로 철강 세이프가드를 발동했을 당시 수입재의 미국 철강시장 점유율은 30% 수준에 불과했다.
국내 철강재 수입량은 지난해 11월부터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중 중국산이 전체 수입량의 58.2%를 차지하며 증가세를 주도했다. 같은 기간 중국산 철강재는 862만5000톤이 수입돼 전년 대비 31.1% 급증했다.
주로 건설용으로 사용되는 H형강(91.6%), 철근(85.2%), 칼라강판(98.3%) 등은 중국산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자동차부품이나 기계장치에 사용되는 특수강 판재(87.4%), 냉연강판(73.0%), 아연도강판(81.8%) 등도 중국산 비중이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자료=한국철강협회)
수입량이 급증하면서 철강 가격도 계속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철강재의 원료로 사용되는 보통강 열연강판의 지난달 평균수입단가는 전년 동기 대비 1.0% 하락한 568달러로, 지난 2012년 3월부터 30개월 연속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산이 국내시장을 활보하면서 일관제철소를 보유하거나 수요처가 확실한 몇 개 소수 업체들을 제외한 철강산업 전반이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렸다. 국내 1위인 포스코도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7.1% 감소하는 등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포스코 등 일관제철소에서 열연 등 원료를 받아 가공, 판매하는 중소·중견 철강업체의 경우에는 가격경쟁력 약화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원재료 매입가격 보다 중국산 반제품 혹은 완제품 가격이 더 저렴해 중간 업체들의 마진 폭이 갈수록 줄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비교적 자체심사 기준이 까다로운 대기업 건설사들의 경우에는 좀 낫지만 규모가 작은 공사나 하도급 업체의 경우 건설비용을 낮추기 위해 중국산을 사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국산 철강재의 품질이 좋은 것은 알지만 중국산과 가격 차이가 커 중국산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에 이어 국내 수입량 2위를 차지하고 있는 일본산 철강재는 수입이 오히려 줄었다. 일본 내 전력비용 등 원부자재 가격 상승으로 일본 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했기 때문. 올 1월부터 8월까지 일본산 철강재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7.7% 감소한 482만6000톤으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 수입량의 32.6%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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