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종에 대한 2차 구조조정이 시작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5일 금융당국과 금융업계에 따르면 채권은행들이 2차 구조조정 명단을 발표한 지 1주일도 안 돼 C등급(부실징후기업) 업체들이 D등급(부실기업)에 해당하는 부도 처리되거나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해 채권은행들의 평가 능력이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권에서는 B등급(일시적 자금 부족 기업)을 받은 업체 중에서도 이런 사례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 구조조정 작업이 허술하게 진행될수록 부실이 불어나고 금융권의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 `살려준다더니'..부도.법정관리행
채권은행들이 지난달 27일 시공능력 101~300위 건설사 70곳에 대한 2차 신용위험 평가 결과를 발표한 이후 워크아웃 대상(C등급)으로 선정된 13개 건설사 중에서 23%에 해당하는 3곳이 1주일 만에 부도를 내거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이번 평가에서 C등급을 받은 중도건설은 이달 초 어음 결제를 하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채권은행들은 시공능력 258위인 중도건설에 대해 평가 당시 워크아웃을 통한 회생 가능성을 기대했으나 지금은 사주와 연락도 끊겼다고 밝혔다.
같은 날 C등급을 받은 송촌종합건설도 모회사인 삼능건설과 함께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직후 부도를 맞았다. 삼능건설은 시공 능력 80위의 호남지역 건설사로 1차 신용위험 평가에서 C등급을 받았으나 최근 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시공능력 178위의 부산 소재 건설사인 영동건설도 워크아웃 대상으로 선정된 직후인 3월 말 법원에 기업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지난 1월 말 1차 신용위험 평가에서 B등급(일시적 자금 부족 기업)으로 분류된 신창건설과 C등급을 받은 대동종합건설도 이미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채권은행들은 시공능력 100위권 밖의 건설사들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여신이 많기 때문에 구조조정 작업이 순탄치 않다고 주장했다.
워크아웃 대상인 모 건설도 최근 채권단회의에서 2금융권이 워크아웃에 동의하지 않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른 3~4개 워크아웃 대상 건설사도 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장의 시공사로 참여했거나 PF대출을 받아 2금융권 여신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은행 관계자는 "제2금융권에서 워크아웃에 반대해 채권단 합의가 여의치 않은 경우가 있다"며 "100대 이하 건설사들은 제2금융권 여신이 절반 가까이 차지해 은행들이 살리고 싶어도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다른 관계자는 "심사 과정에서 C등급 점수가 나온 업체에 무리하게 D등급을 주고 일부러 죽일 수는 없지 않느냐"며 "B등급 업체들 중에서도 부도를 내거나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곳이 추가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B등급을 받고도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신창건설과 관련,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인 농협에 대한 특별검사에서 신용위험 평가 때 일부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제재 대상이 되는지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부실' 구조조정, 은행에 부메랑
은행들이 기업들의 옥석을 제대로 가리지 못할 경우 부실이 불어나 나중에 더 큰 짐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더욱이 은행들은 작년 결산 때 1차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충분히 쌓지않아 올해 1분기 추가로 적립해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은행은 1차 건설.조선사 구조조정과 관련해 추가로 쌓아야 할 충당금은 1천500억 원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나 3천300억 원까지 늘어날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예금보험공사도 우리은행과 맺은 경영이행약정(MOU)상 1분기 총자산이익률(ROA) 목표를 0.1%로 설정했지만 1차 구조조정 관련 추가 충당금이 발생하면 ROA가 -0.3% 수준까지 떨어져도 목표 미달이 아닌 것으로 간주해주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워크아웃이 진행되는 기업은 연체채권 등급이 `요주의'에서 `고정'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모든 은행은 충당금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LIG투자증권은 작년 말 재무제표를 기준으로 1차 구조조정 대상 건설사들을 재평가한 결과,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이 추가로 적립해야 하는 충당금은 1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 은행은 지금까지 9천900억 원의 충당금을 쌓았다.
LIG투자증권 유상호 연구원은 "자기자본 대비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비중이 4배가 넘는 건설사는 추가 부실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들 기업에 대한 은행의 여신이 6조~7조 원 수준이어서 2~3개 업체의 등급만 낮아져도 추가로 쌓아야 하는 충당금은 1조 원 정도에 이른다"고 말했다.
한국투자증권 한상희 애널리스트는 "시장에서는 건설업계 구조조정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며 "C등급으로 매긴 기업은 아예 한 단계 낮은 D등급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재 채권은행들이 진행 중인 해운업종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가 건설업종의 전철을 밟을 경우 채권금융기관 주도의 구조조정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