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중견가전업체인 모뉴엘이 갑자기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은행권의 대출 피해금액이 수천억원에 달한다.
이에 따라 지난 7월부터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있는 기술금융 대출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원회가 기술금융 확대를 독려함에 따라 은행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해외진출 금융지원을 늘리고 있는데, 이들 업체 가운데 '제2의 모뉴엘'이 없으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피해 없는 신한·우리은행 "2년전부터 이상한 낌새"
◇경기도 안양에 위치한 모뉴엘의 자회사(사진=뉴스토마토)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0일 수원지방법원에 법정관리 신청한 모뉴엘의 금융권 대출은 총 6700억원에 달한다.
대출액이 가장 많은 곳은 기업은행으로 1500억원에 이르고, 산업은행(1165억원), 외환은행(1100억원), 국민은행(700억원), 농협은행(700억원), 수출입은행(400억원) 등도 상당한 금액이다.
대출금액으로 보면 국책은행이 시중은행에 비해 월등하다.
6700억원 가운데 3000억원가량은 모뉴엘이 제품을 수출하면서 무역보험공사로부터 받아 온 보증서를 근거로 은행들이 대출해줬다.
이 과정에서 모뉴엘이 수출액을 부풀려 서류를 조작한 뒤 은행에 제출했으며, 단기간에 수출 규모를 키운 듯이 위장해 운용하다가 결국 좌초한 것으로 추정된다.
시중은행은 2년전부터 수상한 낌새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지난 2012년까지 모뉴엘과 거래를 이어오다가 일치감치 거래를 중단했다. 현재 두 은행에는 모뉴엘 대출이 없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재작년까지 모뉴엘과 거래가 있었는데 해외로 납품하는 매출처가 불확실했고 실제로 해외에 공장이 있는지도 불확실했다"고 전했다.
이어 "당시 매출액이 2000억원씩 급증했지만 은행 내부 여신심사에서도 회계가 불투명하고 매출처가 명확치 않다는 지적이 나와 거래를 줄여나갔다"고 말했다.
신한은행 관계자도 "모뉴엘의 매출이 정상 매출인가 아닌가에 대해 불신이 있었다"며 "그래서 기존 대출에 대한 상환을 계속 시켜나갔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2012년에는 모뉴엘이 어느 은행을 가더라도 거래를 할 수 있도록 재무 상태가 좋았었는데 이들 은행서 빠져 나간 거래들이 국책은행으로 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은행 직원이 현실적으로 보증서에 대한 현장 실사를 일일이 하기 힘들지만 매출 확인만 제대로 했어도 피해가 이렇게 크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정부에서도 극찬하는 혁신기업이다 보니 서류에만 의존한 면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 "제2의 모뉴엘 또 없겠나" 전전긍긍
모뉴엘사태 여파는 금융위원회가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기술금융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보인다.
기술금융은 중소기업이 우수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면 창업한지 얼마되지 않거나 신용등급이 높지 않더라도 기술평가서를 바탕으로 은행권의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술금융 범위에는 수출금융 지원도 포함된다. 기술력은 있으나 신용도가 약하거나 담보력이 약해 해외진출이 어려운 기업에 현지 공장 설립과 기계도입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국민·신한·외환은행 등 시중은행들은 올 하반기부터 유망수출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책을 잇따라 내놓았다. 무역보험공사와 손을 잡은 곳도 상당수 있다.
은행들은 각 사별로 최대 5000억원의 수출금융 지원액을 내놓겠다고 밝힌터라 '제2의 모뉴엘'이 나타나지 않을 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실제로 수출입은행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수은은 중견수출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히든챔피언' 제도를 운영중이다. 지난 2012년 모뉴엘을 히든챔피언으로 선정하고 약 2500억원을 지원했으나 이번 사태로 700억원을 돌려받지 못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현재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모뉴엘에 대출해준 은행들을 상대로 부실 대출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당국이 은행들로부터 기술금융 실적을 매월 보고받는 식으로 양적 성장을 유도하고 있는데 훗날에 기업 도산에 따른 부실 대출은 은행들이 뒤집어 쓰는 것이 아니냐"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