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준혁기자]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라는 말처럼 한 단계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다."
자신의 수상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소감은 매우 정제돼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자격이 있었기에 어색하지 않았다. '인생극장'이라는 말이 걸맞는 서건창(25·넥센히어로즈) 이야기다.
서건창은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최우수 신인선수 및 부문별 시상식'에서 최우수 선수상(MVP)를 받았다.
서건창은 한국야구기자회의 총 유효 투표수인 99표 중 77표를 얻어 77.78%의 압도적 득표율을 기록했다.
이로써 서건창은 류현진(27, 2006년 신인왕·MVP 동시 수상, 당시 한화이글스·현 LA다저스)에 이어 신인왕과 MVP를 모두 경험한 두 번째 선수가 됐다.
2012년 신인왕 수상 이후 2년만에 MVP에 올랐다.
◇서건창(25·넥센히어로즈)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최우수 신인선수 및 부문별 시상식'에서 최우수 선수상(MVP)트로피에 입을 맞추고 있다. ⓒNews1
◇"팬들을 흥분시킬 게임 메이커가 되겠다"
올해 서건창은 프로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전경기(128경기)에 출장해 7홈런 48도루 67타점 135도루, 타율 3할7푼(543타수 201안타)을 기록한 것이다.
안타 부문은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200안타 돌파의 대기록이고, 득점 부문도 한 시즌 역대 최다 기록이다. 타율도 사상 최고는 아니지만 선두다.
이밖에 3루타도 종전 1위인 이종운(당시 롯데자이언츠 선수·현 롯데자이언츠 감독)의 14개를 넘는 17개를 쳤다.
덕분에 서건창은 11시즌 만에 50홈런(52개)을 넘긴 박병호도, 유격수 최초의 '40홈런-100타점'(117개) 기록을 써낸 강정호(이상 넥센)도 제치고 MVP에 오르는 영예를 안았다.
서건창은 "정말 고맙다. 2년 전에 이 자리(신인왕)에 섰을 때 굉장히 떨렸다.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떨린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면서 "어려운 시기에 포기하지 않고 달려온 게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라온 원동력이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감사의 고마움도 전했다. 서건창은 "감사드릴 분이 많아 일일이 거명하지 못하지만 모교 스승님과 이장석 구단 대표, 프런트, 염경엽 감독님과 코칭스태프, 동료, 선·후배, 언론사 기자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기대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안고 시작했는데 작은 것 하나에 실패하면서 얻은 깨달음,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깨달음이 컸다"면서 "자신을 속이지 않고 준비해서 팬들을 흥분시킬 게임 메이커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처럼 한걸음 더 나가서 한 단계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다"며 "후원자 역할을 해준 가족에게 감사드린다. 팬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말로 소감을 마쳤다.
◇서건창(25·넥센히어로즈)이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14 한국야쿠르트 세븐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최우수 신인선수 및 부문별 시상식'에서 최우수 선수상(MVP)가 돼 시상대에 오르자 염경엽 넥센 감독 등이 꽃다발을 전해주고 있다. ⓒNews1
◇프로지명 받지 못한 신고선수 출신
서건창에게 붙는 수식어는 '인생극장'이다. 그만큼 서건창의 삶은 극적이다.
서건창은 광주일고 졸업 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해 2008년 LG 트윈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하지만 1군에 단 1경기 나선 뒤 방출 통보를 받게 됐고 경찰청 야구단에도 떨어지며, 2009년 육군에 현역으로 입대하게 된다.
군 복무 후 2011년말 입단 테스트를 거쳐 넥센 유니폼을 입었다.
바로 다음해인 2012년 서건창의 삶은 크게 달라졌다. 백업선수로 평가되던 그는 김민성의 부상으로 인해 바로 주전 2루수 자리를 꿰차더니 127경기에 출전했고, 39도루 115안타, 타율 2할6푼6리의 성적을 거두면서 신인왕이 됐다.
지난해엔 총 86경기에 출전해 33도루 84안타, 타율 2할6푼6리로 다소 부진했지만 올해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타격폼 수정을 거친 끝에 방망이를 몸에 꼭 붙인 독특한 자세를 택한 그는 온갖 기록을 갈아치웠다. 최초 200안타 돌파, 최다 3루타, 타율왕 등의 타이틀은 그렇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