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역사의 한 페이지"..'국제시장' 황정민의 진정성

입력 : 2014-12-13 오후 3:47:01
◇황정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황정민과 인터뷰를 하기 전 실제 황정민은 어떤 사람일까 얼굴을 상상해봤다.
 
<달콤한 인생>의 난폭한 얼굴부터, <너는 내 운명>의 순박한 황정민, <신세계>의 기개가 넘치는 황정민, <부당거래>의 카리스마 황정민, <국제시장>의 책임감 넘치는 혹은 꼬장꼬장한 얼굴까지 여러 황정민의 얼굴이 떠올랐다. 연기 잘하는 배우와의 만남은 대부분 즐거운 일이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뷰 현장을 찾았다.
 
"아이구 반갑습니다"라며 보자마자 선한 웃음을 던지는 실제 황정민의 얼굴은 작품에서 보지 못했던 또 다른 푸근함이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얘기를 이미 다수 취재진에게 들어온 터였다. 그렇게 지난 12일 서울 삼청동의 한 커피숍에서 영화 <국제시장> 인터뷰 차 그를 만났다. 첫 미소만 보고도 황정민이 갖고 있는 인품이 전달됐다.
 
영화 <국제시장>은 윤제균 감독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 만든 영화다. 극중 주인공의 이름이자 황정민이 연기한 덕수는 윤 감독의 실제 아버지 이름이다. 김윤진이 연기한 영자는 실제 어머니 이름이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만든 작품이기에 캐스팅도 고심이 컸다. 윤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황정민으로 밀어부쳤다. "사석에서 많이 봤다. 그 때마다 인간적인 진정성이 있었다. 운명처럼 다가왔다"는 게 이유였다.
 
윤 감독이 황정민에게서 찾아낸 인간적인 진정성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진정성을 찾아봤다.
 
◇황정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국제시장>은 역사의 한 페이지니까"
 
<국제시장>은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의 격변기, 청춘을 다바치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황정민은 그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 덕수를 연기했다.
 
어린시절 북한 흥남 철수를 때 동생과 아버지를 잃고나서, 한 집안의 가장이 된 덕수는 20대 때 돈을 벌기 위해 서독 탄광으로 떠난다. 3년 동안 목숨을 걸며 일을 하고, 그 과정에서 아내를 얻는다. 살만해지다싶었는데 동생의 결혼비용과 고모의 점포를 사기 위해 또 돈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떠난다. 겨우 목숨은 부지해왔지만 다리를 절뚝이게 됐다. 그래도 살아돌아왔다는 마음에 웃음을 짓는 덕수다.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자 마음 속에 잠시 묻어뒀던 여동생과 아버지를 찾고 싶어진다. 나라에서는 이산가족찾기가 대대적으로 진행된다. 덕수는 가족을 찾을 수 있을까.
 
황정민은 20대 덕수부터 70세 노인이 된 덕수까지 연기했다. 가족을 위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그 결과 자식과 손주 손녀까지 보게됐다. 그리고 꼬장꼬장한 자존심도 몸에 베겼다.
 
사실 황정민을 만나기 전에는 다른 얼굴보다 70세 꼬장꼬장한 황정민의 얼굴이 제일 깊게 떠올랐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랬다.
 
황정민은 70세 덕수가 가장 중요한 덕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인물이고 영화의 결론이 되는 인물이니까요. 어떤 인물이기에 이 사람의 삶을 우리가 투영하고 있는 거냐는 질문이 되기도 하죠. 그 궁금증을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제일 큰 핵이었어요."
 
분장을 한다. 하지만 분장에 투입되는 시간은 최단축시키려고 했다. 분장의 디테일보다 중요한 건 연기의 디테일이었기 때문이다.
 
"3시간 정도 분장을 하는데, 더 길어지면 진빠질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면 연기가 안 되거든요. 관객들에게 중요한 건 분장보다 손모양, 행동, 말투, 걸음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영화는 마치 고음으로 시작해서 하이라이트까지 고음으로 내달리는 노래를 들은 듯 진하다. 플롯이 파도를 치기보다는 높은 곳에서 일직선을 그린다. 그래서 황정민은 평범해지려고 했다. 평범해야만이 관객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네 개의 시퀀스를 다 겪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이 덕수라는 인물이 내 아버지가 될 수도 있고, 너의 아버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했어요. 공통분모의 아버지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대단히 평범하게 비춰졌으면 했어요."
 
누군가는 처음부터 이 영화가 슬펐다고 한다. 혹자는 꾹꾹 참다가 이산가족 찾기 때 눈물이 터졌다고 한다. 또 다른 이는 마지막에 덕수의 눈물에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제각각이지만 슬프다는 건 같다. 이 영화를 두고 '신파'라고 한다. 감정과잉이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뿐. 황정민에게 물었다. 감정과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였고, 또 역사였다. 나는 간접적으로 다 경험했거든요. 그 부침들을요. 지금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지만, 세포 안에는 배여 있을 거 같아요. 분석적으로 보면 과할 수 있지만, 가슴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수준인 거 같아요. 사실 겨우 60년이거든요. 그렇게 오래 된 얘기가 아닌데 먼 얘기 같잖아요. 사실 아주 가까운 얘기거든요."
 
그러면서 황정민은 스마트폰을 예로 들었다. 너무 빨라졌다는 것이다. 삐삐도 있었고, 2G폰을 쓴 것도 얼마 전인데, 이제는 마치 스마트 폰이 처음부터 튀어나온 것처럼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왜 이런 느낌을 받는지 모르겠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60년이 길면 길지만 짧다면 짧은 시기예요. 우리 아버지와의 갭을 줄이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를 보고 아버지와 한 마디라도 나누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영화는 성공한 영화라고 봐요."
 
◇황정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나에게 있는 진정성은.."
 
윤 감독의 아버지 이름이 덕수라는 것은 지난 11월 있었던 <국제시장> 언론시사회 때 알려졌다. 황정민도 그 때 알았다. 윤 감독은 내놓고 말하고 다니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 영화가 그 어느 영화보다도 그에게 남달랐다고 했다. 그러니 캐스팅이 얼마나 고됐을까. 윤제균 감독은 처음부터 황정민으로 낙점했다고 했다.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황정민을 캐스팅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이미 얘기를 많이 들어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황정민은 자신에게 어떤 진정성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그는 담담하게 "인물을 대하는 태도"라고 했다.
 
"수 많은 역할과 수 많은 영화를 하는데 최대한 황정민을 보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요. 인물만 보여주려고 해요. 그런 부분에서는 자신감도 있고, 그런 점에서 오는 진정성이 관객들에게 비춰진다고 생각해요. 정말 많이 준비하거든요. 이 인물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서. 기자들이 취재하듯이 저희도 취재 많이 해요."
 
배우 황정민이 이런 점이 있다면, 인간 황정민은 어떨까.
 
"소탈하게 분명히 있으니까요. 촬영하지 않을 때는 정말 편안히 있고싶어요. 일상 생활일 때까지 배우인척 폼잡고 싶지 않아요. 만약 그래야 한다면 배우 하고 싶지 않아요."
 
◇황정민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그래도 사랑
 
정말 수도 없이 많은 역할을 연기한 배우다. 해본 것보다 안 해본 역할을 찾기 쉬울 수 있다. 악역부터 순박한 시골청년, 대통령후보까지 그의 역할 스펙트럼은 연기폭처럼 넓다.
 
그래도 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 그래도 황정민에게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 궁금했다.
 
"글쎄요. 딱히 딱 떠오르지는 않는데, 또 저를 끌어당기는 시나리오가 있겠죠. 다른 건 몰라도 사랑 얘기는 계속 하고 싶어요. 40대의 사랑, 50대의 사랑, 노년의 사랑까지. 사랑만큼은 놓고 싶지 않아요."
 
<남자가 사랑할 때>에 출연할 때도 이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충무로에서는 이제 거의 멸종하다시피 한 진한 멜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왜 사랑입니까?"
 
"사랑 얘기할 때가 제일 재밌어요. 특히 남녀간의 사랑을 얘기할 때가. 감정을 제일 잘 알잖아요. 소통하는 것도 정말 재밌어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어요. 또 하나는 히어로에요. 아이 때문에라도 지구를 한 번 지켜보고 싶어요. 왜 맨날 미국이 지켜야돼요. 한국도 지킬 수 있잖아요. 하하."
 
지구를 지키고 싶은 이 순정남은 <국제시장>이 끝난 뒤에는 영화 <베테랑>으로 돌아온다. 2014년보다 더 빠를 것 같은 2015년을 기다리고 있다.
 
"올해 <베테랑> 찍고 5개월 정도 쉬었어요. 쉼없이 달려오다가 오랜 만에 가족하고 지냈죠. 저한테는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어요.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하면 즐기면서 이 직업을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정립이 됐어요. 시야도 더 넓어지고. 내년이 더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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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상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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