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병윤기자] 증권업계에 존재하는 대표적인 갑·을 관계는 '바이사이드(Buy-side) 애널리스트'와 '셀사이드(Sell-side) 애널리스트'가 있다.
셀 사이드 애널리스트는 증권사 리서치센터를 떠올리면 되는데 담당 종목이 잘 팔리도록 해야 하는 입장인 반면, 바이 사이드 애널리스트들은 셀 사이드 애널리스트들의 종목을 사들이는 입장이다.
바이사이드 애널리스트의 대표적인 곳으로 연기금을 들 수 있는데, 그 중 국민연금은 국내 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손 꼽히는 규모를 자랑한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국민연금의 자산 규모는 약 460조원에 달한다. 이렇게 막대한 운용 자산 규모를 자랑하는 국민연금은 일명 '큰 손'으로 불린다.
그러나 증권업계에서 귀하신 몸으로 통하는 국민연금이 유독 작아지는 경우가 있다. 바로 매년 열리는 기업의 주주총회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부터 현재까지 국민연금은 21개 상장사의 26개 주총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혔지만 그 중 부결된 안건은 단 3건에 불과하다.
특히 업무상 배임혐의 이력이 있는 인사를 이사로 선임하는 안이나 최근 5년 이내 계열회사 임직원을 이사·감사위원회로 선임 안 등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명백히 훼손시키는 안에 대해 국민연금은 속수무책이었다.
때문에 국민연금은 매년 주주총회에서 주요 주주이면서도 '무늬만 대주주'라는 비아냥을 동시에 받고 있다.
국민연금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해외 큰손은 네덜란드공적연금(ABP)이 있다. ABP의 지난해 3분기 그 운용자산 규모는 약 434조원(3340억유로 기준)이다.
ABP는 해마다 책임보고서(Responsible Report)를 발간해 자신들의 활동을 공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는 눈에 띄는 활동은 포스코(
POSCO(005490))의 인도 오디샤 일관제철소 프로젝트에 관련 사례다.
포스코는 지난 2005년 6월 오디샤 정부와 1200만톤 규모의 제철소·항만 건설, 철광석 광산 개발 등을 내용으로 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하지만 이 협약은 사유지에서 이주되는 가구와 토지 상실자 등에 대한 인권 문제 등이 제기되면서 꼬이기 시작했고,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비정부기구(NGO) 등이 포스코의 인도 제철소 사업은 인권·환경침해 가이드라인을 위반했다고 반발하고 나서면서 국제 갈등으로 번졌다.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비정부기구들은 각 국의 연기금에까지 포스코 오디샤 프로젝트와 관련해 이의를 제기하는데 그와 관련해 ABP가 공개한 내용은 연기금인 ABP가 해당 프로젝트에 대해 책임있는 투자자의 역할을 다했는 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BP는 보고서를 통해 "진지하게 사회적 책임을 받아들이고 포스코와 관련된 사업에 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인도의 포스코 프로젝트를 직접 방문하고 지역 관계자 등을 만나며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섰다고 언급했다.
ABP의 포스코 지분율은 0.084%에 불과했지만, 결국 이 프로젝트는 10년 가까이 사업이 보류되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국민연금의 경우 반대의사를 밝혔던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합병건에 대해 정작 주주총회에서는 반대표가 아닌 기권표를 행사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반대표를 행사하게 될 경우 두 회사 주가와 금융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국민연금은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운용독립성 등 총 5개의 기금운용 원칙을 갖고 있다. 이 중 공공성과 유동성은 각각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하고 금융시장 충격이 최소화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국민연금 본연의 역할은 시장안정보다는 기금의 수혜자인 연금 가입자에게 최대한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같이 장기적이고 규모가 큰 기관투자자들은 대주주로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려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며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 합병 건에 서도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하고 주주들을 독려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매년 주총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기금의 의결권이 결국 연금 가입자들의 권리와 이익을 훼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