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12일부터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도가 시행된다. 그러나 국가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국정과제로 추진되는 사업임에도 정부와 업계 모두 제도준비가 부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자칫 정부와 업계 모두 혼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7일 환경부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오는 12일 오전 10시 부산 한국거래소 본사에서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시장 개장식을 열고 배출권 거래를 시작한다.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이하 온실가스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에 일정 기간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의 양(배출권)을 부여한 후 기업끼리 배출권을 매매하게 한 제도다. 정부는 이를 통해 오는 2020년까지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보다 최대 30%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525개 업체를 온실가스 거래제 대상으로 지정하고 1차 계획기간(2015~2017년) 동안 배출권을 16억8655만KAU(Korean Allowance Unit)로 확정했다.
하지만 정부의 계획과 달리 온실가스 거래제는 시작부터 삐걱댈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온실가스 거래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환경부가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53개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배출 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를 보면, 14개 사업장(26%)에서 20건의 법령을 위반한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배출 방지시설을 훼손된 채 방치하거나 온실가스 측정기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 특정 유해물질을 허용기준 이상으로 배출한 곳도 있었다.
특히 환경부는 최근 525개 온실가스 거래제 대상 업체 가운데 200여개 업체로부터 배출권 할당량 이의제기를 받고 고민에 빠졌다. 이들 업체들은 업체별 동향이 고려되지 않아 할당량이 지나치게 적어 과징금 폭탄에 시달릴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배출권을 어길 때 내는 과징금과 배출권 거래비용이 기업 입장에서는 이중과세 성격"이라며 "배출권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명확한 산출근거가 제시돼야 하고 제도 시행에서 업계의 의견이 가장 우선적으로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계의 반발만 탓하기에는 정부의 준비상태도 부실하기 마찬가지다. 정부는 그동안 온실가스 거래제에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산업통상자원부와 거래제 도입을 적극 주장한 환경부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업계의 눈치를 살피다 제도 도입을 지연시켰다.
실제로 정부는 온실가스 거래제를 올해 1월1일부터 시작하기로 했으나 기업별 할당량 배정작업이 늦어지면서 온실가스 거래시장 개장일이 12일로 연기됐다. 업계의 배출권 이의제기까지 반영할 경우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또 온실가스 거래제는 기업으로 하여금 배출권을 거래하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기업이 할당된 배출량 이상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못하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는 제도지만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 단속 책임을 지방자치단체로 이관한 채 손을 놨다. 문제는 산업단지와 음식물 폐기물시설, 쓰레기 매립장, 하수처리시설 등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공공시설물을 가진 지자체도 딱 부러진 대책이 없다는 것. 산업단지와 에너지시설이 밀집한 경기도는 온실가스 관련 업무를 맡을 공무원이 3명에 불과하다.
더구나 지자체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동 단위 온실가스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거나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규제 위반에 대한 행정처분을 집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적극적인 온실가스 줄이기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앙정부는 업계 눈치를 보고, 지자체는 수동적으로 나서는 사이 온실가스 거래제에 사각지대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개발연구원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 지원과 배출권거래제 대응을 위한 지자체 대책 마련 등이 필요한 데 정부는 일단 제도를 시행하고 온실가스 거래소를 정착시키는 데만 몰두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