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수년 째 전국 곳곳에서 가축전염병이 발생해 국가 경제에 수십조원대의 피해를 입혔다. 자식처럼 키운 가축이 살처분 되는 것을 지켜보는 농가나 살처분을 직접 수행해야 하는 공무원들의 정신적 고충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옛말마저 무색하리만큼 '사후약방문'격 방역 대책은 남루해진 외양간에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뉴스토마토>는 국내 가축전염병 방역 대책의 현실적 문제를 짚어보고,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백신을 맞은 돼지가 구제역에 감염됐다. 정부는 구제역 백신의 효과를 자신하다 며칠 새 말을 번복하며 논란을 자초했다.
백신의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자 방역당국은 부랴부랴 해명 브리핑을 열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높아진 국민들의 불만과 불신은 여전하다. 법적 근거도 갖추지 못한 '땜질식' 이동통제 조치도 화를 키웠다.
27일 방역당국 관계자는 "백신을 맞고 항체가 생긴 돼지도 구제역에 감염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제역 백신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며 해명에 나섰다.
또 방역당국 관계자는 "이번 케이스는 문제 있는 개체를 사람이 만져 우리 안 다른 돼지들에게 전파시킨 것으로 일반적 전파 경로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오히려 이 관계자는 "농장주가 돈사에 들어갈 때 옷도 좀 갈아입고 차단 방역만 잘했어도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며 사태의 탓을 농가로 돌렸다.
◇'허위' 드러난 고역가 백신 '효엄'..여전히 "믿어달라"
방역당국의 이같은 책임 회피에 비판 여론은 더 거세지고 있다. 그동안 정부의 과신하는 태도와 달리 '백신 자체의 한계'를 우려하던 농가의 목소리도 현실화됐다.
농식품부 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이번에 문제가 된 백신은 지난 2010년과 2011년 구제역 발생 당시에 쓰인 백신과 같다. 작년 여름, 유전자적으로 상당히 차이가 나는 의성 구제역 때도 마찬가지로 이 백신이 쓰였다.
주이석 축산검역본부장은 "2010년 2011년에 (이 백신이 구제역을) 막지 못했으면 (백신을) 당연히 바꿨겠지만 잘 막았다"고 말했다. 이어 "작년 여름 의성 구제역 때도 이 백신으로 완전히 막을 수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주이석 본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구제역이) 퍼지긴 퍼졌지만 일부에서 퍼지고 있는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그는 "백신 접종을 받은 돼지에 면역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 하더라도 같은 돈사 안에서 다른 돼지가 뿜는 많은 양의 바이러스를 방어하지는 못한다"며 "백신도 백신이지만, 차단 방역을 제대로 해주지 않으면 이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경기도 여주시에서도 구제역 확진 판정이 났다. 방역요원들이 살처분된 돼지를 매몰하고 있다.ⓒNews1
이는 구제역 백신의 '효엄'에 문제가 있음을 방역당국이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또한 백신의 항체 역가와 관계 없이 이같은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돈사 내 돼지 1마리가 구제역에 감염되면, 이 돼지로부터 나온 바이러스가 여러 돈방의 접종 된 다른 돼지들까지 감염시킬 수 있다는 것이 실제 사례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방역당국 관계자는 "출하 전 어느 정도 무게가 나가는 비육돈을 골라낼 때나 모돈의 임신진단 등의 과정에서 사람들이 우리에 들어가 모돈과 새끼 돼지들을 만지는 것은 바이러스를 개체별로 묻혀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방역당국이 강조했던 "고역가(방어력이 높은 고농도) 백신이 모든 것을 막아줄 것"이라던 주장은 허위로 밝혀진 것이다.
◇전업농 백신정책 비용 부담 커.."백신 맞추면 손해 보기도"
이같은 정부의 변명에 농가와 지자체장들이 반발하며 비판에 나섰다.
한 농가 관계자는 "정부 정책 때문에 효과도 100% 신뢰할 수 없는 백신을 우리 돼지들에 놓게 됐는데 이제와서 백신을 맞아도 감염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목소리를 높혔다. 이어 그는 "돼지가 많은 농가는 이 비용의 절반까지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며 "불합리한 정책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시종 충북도지사는 "국가 정책에 따라 백신을 접종한 농가가 출하 때 백신주사 접종 자국으로 인해 제 가격을 받지 못하게 되는 등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얘기가 있다"고 꼬집었다.
현재 구제역 백신은 돼지 1000마리 미만 농가에는 무상으로 제공되지만, 그 이상의 전업농가에는 공급가의 50%만 지원된다. 돼지 1마리에 주사하는 백신 1회분 분량의 가격은 2000원 가량되는데, 농가는 이 중 1000원만 지원 받는다. 즉 연 2회 접종 기준, 돼지 1만마리 전업농가는 매년 약 2000만원을 자체적으로 구제역 백신접종에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범국가적' 구제역 손실.."예방 비용 농가에 떠넘기면 안 돼"
구제역 발생은 '범국가적'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부의 대처가 그만큼 중요하다.
박봉균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 2010~2011년 구제역 발생으로 인해 한국이 입은 경제적 손해는 직접적인 것만 3조원에 달한다. 지역 경제의 위축과 축산물에 대한 혐오 인식 등 간접 손실까지 합하면 이 피해규모는 3배 이상으로 커진다.
방역에 대한 책임을 농장주 등 개인에 떠넘겨서는 안되는 이유다. 특히 이번 사태는 백신의 '효엄'을 과신해 농가에 느슨한 차단 방역을 사실상 유도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
또 다른 축산업 관계자는 "갓 4년차를 맞은 백신 정책을 농가가 아직도 제대로 따라오지 못한다고 나무라면서 과태료 부과 등 채찍질만 하려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관련 교육부터 제대로 실시하고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정부는 이제와서야 구제역 백신의 한계를 인정했지만,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백신주사가) 돼지에게 잘 먹히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며 "애초에 백신 하나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떠벌린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에 방역당국은 구제역 백신에 대한 연구를 강화해 백신의 효과를 개선해 나간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했다.
주이석 축산검역본부장은 "현재 건립중인 백신연구센터가 올해 8월에 완공된다"며 "지금도 연구하고 있지만 이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 현재 제기되고 있는 문제(해결)에 더 맞는 백신을 만들어 공급할 것"이라며 "오는 2016년 하반기까지는 (백신이) 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