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병호기자] 정부와 대기업 간 투자간담회가 점차 실효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액만 많지 이행률은 저조하고 간담회에 참석하는 기업 수도 줄어서다. 투자간담회가 연초나 연말 정부와 기업의 전시용 행사로 전락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 자리에서 주요 대기업들은 올해부터 총 34조4000억원의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열린 투자간담회(28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6조원 증가했다.
11일 서울 중구 서울플라자 호텔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16개 기업 최고경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주요기업 투자간담회'가 열렸다.ⓒNews1
단순 투자액만 보면 지난해 말 열린 산업부-16대 기업 투자간담회 때보다 투자 규모가 늘었다. 당시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은 28조4000억원의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34조4000억원의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번 투자규모는 지난해 10월 제시한 28조4000억원 가운데 남아 있는 22조4000억원과 산업부가 발굴한 현장대기 프로젝트 10조9000억원, 올해 새로 발굴한 사업이 1조1000억원 등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해 말 16개 주요기업이 28조원의 투자에 나선다고 했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착수된 투자와 유지보수 투자 전환, 지자체와 협의 중인 투자 프로젝트 등이 6조원"이라며 "나머지 22조원의 투자가 올해부터 본격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이미 지난해부터 계획된 투자액까지 올해 투자간담회에 집계한 것으로, 22조4000억원을 제외하면 실제로 올해부터 새로 계획된 투자액은 12조원에 그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정부가 투자액을 많이 잡아 놓으려는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투자 이행률을 제대로 관리·확인하지 않아서다. 지난해 10월 업계가 제시한 28조4000억원의 투자액만 봐도 5개월 동안 실제 투자 이행률은 겨우 2%에 불과하다.
나머지 22조4000억원과 올해 새로 제시한 12조원이 언제 투자될지는 정부도 모르는 셈.
이러다보니 업계가 연초·연말 제시한 투자액이 실제로 집행된 비율은 높아야 50%~60% 선에 머무른다. 2013년 4월에 열린 산업부와 30대 그룹 투자간담회에서 재계는 148조8000억원의 투자를 계획했으나 이행률은 50%에도 못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부는 기업 영업비밀상 업계의 투자 이행률을 확인하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기업의 투자는 경영여건에 따라 달라지는데 정부가 이를 일일이 확인하지 못하고 그럴 권한도 없다"며 "34조원의 투자가 워낙 큰 규모고 공장 증설 등은 시간이 필요해 투자 이행률은 시기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투자간담회 규모가 작아지는 것도 문제다. 업계는 정부에 투자촉진 관련법 제·개정과 규제개선 등을 요구하는데 정작 투자간담회에 오지도 않고 투자계획도 줄이고 있는 것이다.
투자간담회에 참석하는 기업 수를 보면 MB정부와 박근혜정부 2년차인 2014년 초까지만 해도 삼성전자와 현대차, LG, 포스코 등 30대 그룹이 참여했으나 지난해 10월부터는 참석 기업이 16개로 절반 정도 줄었다.
기업이 밝힌 투자액도 2012년 9월 열린 '지식경제부-30대 그룹 투자간담회'에서는 151조1억원의 투자와 12만명의 고용계획이 제시됐고, 2013년 4월에 열린 30대 그룹 간담회에서 업계는 148조8000억원의 투자와 12만8000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투자간담회를 보면 정부가 기업에 투자해달라고 애원하는 모양새"라며 "투자규모는 줄고 이행률도 관리를 안 하면서 재계가 바라는 규제완화만 일사천리로 진행돼 사실상 간담회의 의미를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