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곽보연기자] 국회가 진통 끝에 3일 오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 일명 김영란법을 가결했다. 과잉 입법 논란과 언론의 자유침해, 가족파괴죄 등 정치권에서 수많은 논란을 낳았지만 결국 국회는 여론의 손을 들었다.
김영란법은 이날 국회의원 295명 중 247명이 표결에 참석한 가운데 226명의 찬성을 얻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과 김종훈 의원, 김용남 의원과 안홍준 의원은 반대표를 행사했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소관 상임위원회인 정무위원회는 지난 2012년 8월22일 국회에 제출된 김영란법을 본격 심의하기 시작했다.
공직자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 유무를 떠나 100만원 이상의 금품이나 향응·접대를 받을 경우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부과를 할 수 있게 한 김영란법은 법안이 제안됐을 당시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었던 당시 김영란 위원장의 이름을 따 만들어졌다.
이 법안은 2012년 제안된 이후 2013년 8월 정부안이 국회에 제출돼 지난달 8일에서야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이날 본회의에서 김영란법의 심사를 맡았던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식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이 법은 매우 충격적인 법"이라며 "그러나 김영란법은 지난 2004년 정치관계법 개정안처럼 잘못된 로비와 접대문화를 근절하는데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지에는 찬성..독소조항 많아"
국회 법사위는 이날 오전 10시부터 전체회의를 열고 김영란법 처리를 위한 최종 심사를 거듭했다. 전날 여야 원내대표가 '2월 임시국회 내 김영란법 처리'를 극적으로 타결지으면서 열린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이상민 법사위원장은 "김영란법은 문제 투성이에 우려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저를 포함한 많은 의원들이 걱정하고 있다"며 "정무위원회가 법치주의적 위헌성을 안고서도 법안을 제대로 다듬지 못한 채로 법사위 타결 직전까지 와 있음이 매우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법사위원장으로서 자괴감을 이루 말 할 수 없다"며 "법치주의에 반하고 문제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론을 의식해 이 법안을 통과시킬 수 밖에 없는 현실에 저 자신도 반성해야 할 점이 많다는 점을 느낀다"고 털어놨다.
그는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법안을 잘 다듬어야 한다"며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는 것과 함께 법치주의에 의한 선의의 피해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2월 임시국회 마지막날인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안)이 재석 247인 중 찬성 226인, 반대 4인, 기권 17인으로 가결되고 있다.ⓒNews1
여야 위원들도 이 위원장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홍일표 의원은 "김영란법 처리 과정에 대해 법사위원으로서 반성문을 쓰지 않을 수 없다"며 "영향력이 큰 법일수록 더 꼼꼼하고 철저하게 따져보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표현했다.
홍 의원은 "원칙적으로 이 법의 핵심내용인 처벌기준에 '직무관련성'과 관련된 요건을 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단순히 수수금액을 기준으로 형벌을 가하는 것은 법 체계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할 경우 뇌물을 준 사람이 직무연관성, 대가성과는 상관없이 공직자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반대로 100만원 이하의 금품을 받을 경우 뇌물 공여자가 직무연관성이 있는 사람이더라도 수수자는 과태료 처분만 받는다.
◇청탁성 99만원 과태료..직무 무관 105만원 형벌
홍 의원은 "청탁성으로 99만원을 받은 것과 직무와 연관없이 105만원 받을 경우 99만원이 더 나쁘지만 처벌의 형량이 달라진다"며 "분야에 맞게 세밀하고 치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단순히 금액 기준으로 무조건 형사처벌하겠다고 하면 과연 유효적절한 수단이 되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의 앞자리에 앉은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를 향해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은 맞다"며 "하지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법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야할 필요가 있느냐"며 "김영란법 발효에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이 있는만큼 여러 쟁점에 대해 수정할 것이 있으면 반드시 수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새정치연합 우윤근 원내대표는 "사실 좀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논의했어야 하는건데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국민앞에 약속하면서 이렇게 됐다"고 털어놨다.
우 원내대표는 "이상민 법사위원장과 홍일표 간사, 법률전문가들의 지적도 모두 일리가 있다"며 "하지만 여야가 국민 앞에 천명한 약속을 지키는 것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정치적 행위"라고 해명했다.
이날 서영교 의원과 정의당 서기호 의원은 김영란법(정무위안) 법 적용대상에 사립학교 교원은 포함됐으나 이사장과 임원 등이 포함되지 않은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서영교 의원은 "정무위는 사립학교도 나라로부터 일정부분 지원을 받는 등 국민의 세금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기 때문에 공직자에 준한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하지만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과 임원 등을 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서기호 의원도 "법 취지에 따르면 사립학교 임원과 이사진이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며 "정무위 회의 때도 사립학교 임원과 임시이사를 추가하는 것으로 논의됐는데 최종 법안에서 실수로 빠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권익위원장 "사립학교 이사장 일부러 뺀 것 아니야"
이성보 권익위원장은 "당초 정부제출안은 사립학교를 법 적용대상으로 정하지 않았으나 정무위 논의 과정에서 확대됐다"며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과 임원을 일부러 제외한 것은 아니다"라고 다소 애매한 해명을 늘어놨다.
이에 새정치연합 전해철 의원이 "정무위 속기록을 보면 분명 문제제기를 했고 당연히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과 임원진이 포함돼야 한다고 하지 않았었느냐"고 질타했고, 같은 당 박지원 의원도 "이는 국회의원의 책임을 묻자고 하면서 보좌관만 처벌하는 것과 똑같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노철래 의원도 나서서 "법은 누구나 지킬 수 있게 형평에 맞아야 한다"며 "누군가에 대한 예외를 만들고 통과시킨다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노 의원은 "사립학교 이사장과 임원을 적용범위에 포함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본다"며 "하자가 있음을 엄연히 알면서 우선 통과시키고 추후 보완하자는 것은 지극히 잘못된 발상"이라고 동조했다.
결국 법사위 위원장과 여야 위원들은 김영란법 적용대상에 '사립학교 법인 및 임직원'이라는 규정을 넣어 간신히 논란을 진화했다.
김영란법은 앞으로 1년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9월부터 전면 시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