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7조5항', 김기종씨 적용 가능할까

경찰 "이적 표현물 확인..혐의 수사 집중"
대법판례 "학술목적 소지했다면 처벌 못해"

입력 : 2015-03-09 오후 8:46:08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주한미국 대사 피습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피의자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입증에 전력하고 있지만 법리적인 부분에서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은 9일 브리핑에서 김씨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문건 중 30여건에 대한 이적성을 외부기관에 의뢰하고 이중 10여건이 이적표현물이라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적표현물로 지목된 문건 중에는 1973년 김정일이 직접 저술한 것으로 알려진 '영화예술론'과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에서 발간 '정치사상강좌', '민족의 진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모두 이적표현물이다.
 
범민련은 1997년 5월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인정됐다. 북한이 주장하는 외국군 철수, 핵무기 철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제반 악법의 철폐 등을 목표로 채택하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구성됐다는 게 이적 단체 인정의 이유다.
 
경찰이 적용을 검토 중인 국보법 조항은 제7조(찬양·고무등) 5항이다. 이 조항은 '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보법 7조 1항은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3항은 '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4항은 '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7조5항은 이적표현물을 중심으로 반국가단체 가입 및 동조, 허위사실 날조·유포 등을 망라해 처벌할 수 있는 종합규정인 셈이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 씨가 9일 오후 진료를 받기 위해 서울 송파구 경찰병원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가고 있다.ⓒNews1
 
대법원은 국보법 7조5항을 적용해 처벌하기 위해서는 이적표현물의 단순한 소지만 해서는 안 되고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거나 북한 등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지령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동조 등을 하기 위한 목적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013년 3월 선고된 국보법 7조5항 위반혐의에 대한 판단에서 대법원은 "목적은 범죄 성립을 위한 초과주관적 위법요소로서 고의 외에 별도로 요구되는 것이며 검사가 행위자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행위자가 이적표현물임을 인식하고 이와 국보법 7조5항에서 정한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 등의 행위를 했다는 사실만으로 그에게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또 이 목적 외에 이적표현물의 적극적인 반포 또는 유통을 국보법 7조5항의 적용 요건으로 요구하고 있다. 단순히 가지고 있는 것은 소지죄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같은 판결에서 중학생들이나 부모들을 대상으로 이적표현물을 교육하거나 단체의 교재로 사용한 피고인 A씨에 대해 "피고인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통일연구의 참고자료 등으로 사용하기 위해 이 사건 표현물을 취급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이념, 정치노선 또는 그 주의·주장을 통일교육, 강연 또는 인터넷 게시 등의 방법으로 학생, 학부모, 동료 교사 등에게 전파함으로써 반국가단체의 활동을 찬양·선전 또는 동조하려는 이적행위의 목적을 가지고 이 사건 표현물을 취득·소지 또는 반포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경찰 등 수사당국에서 밝혀야 할 부분이겠지만 현재로서는 국보법 7조5항이 요구하는 '목적'과 '행위' 등의 요건을 김씨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이적표현물에 대한 소유의 목적이다. 김씨는 그동안의 경찰 조사에서 해당 이적물을 집회나 청계천 책방에서 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구하게 된 이유 역시 자신의 학위 논문을 작성하기 위한 참고자료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김씨는 서울 모 사립대 법학과를 나와 1996년 다른 서울 모 사립대 통일정책대학원에서 교육문화정책 석사를 취득했다. '남한 사회 통일문화운동의 과제'가 그의 석사학위 논문이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단순한 학술이나 연구목적으로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경우에는 국보법 위반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사회주의당건설 토론회에 참석해 이적표현물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혐의(국보법 위반)로 기소된 서울대생 이모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이 씨가 소지하고 있던 '대중행동강령'이 이적표현물에는 해당하지만 이 씨가 대학 내 학술 모임에서 이를 토론하기 위해 가지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이적행위를 할 목적이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의 김씨에 대한 국보법 7조5항 위반 혐의에 수사는 현재 이 부분에 집중되고 있으나 김씨가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김씨가 자신이 소지한 이적표현물을 불특정 다수에게 배포했다거나 강연 또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게시했다는 증거도 경찰은 확보하지 못한 상황으로 보인다. 범행 전까지 그가 운영해 온 인터넷 사이트는 조직적으로 운영되어 온 홈페이지가 아닌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rmd)가 사실상 유일하다.
 
복수의 진보운동가들은 김씨에 대해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지만 조직적이거나 규모 있게 행동한 사람은 아니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며 "조직적으로 친북활동을 한 사람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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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