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 수사로 비자금 조성 실체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계열사의 비자금 조성에서 시작된 수사가 하청업체로, 또 다른 해외 계열사로 확산되면서 포스코그룹에 대한 의혹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특히 검찰의 칼날이 비자금의 용처에 대해 집중되면서 돈의 흐름을 쫓아 전 정권 심장부로까지 이어질 태세다.
이미 수년 전부터 세상에 퍼졌던 '설'이 실체가 뚜렷한 커넥션으로 입증되면서, 방치하다 칼을 들이댄 검찰의 의도에 대한 궁금증도 커졌다. 통상 건설은 자금세탁과 비자금 조성 등에 용이하다는 이유로, 재벌이 포기할 수 없는 사업으로 인식된다.
◇포스코건설 해외 비자금..국내 정치권 유입 의혹
검찰의 이번 수사는 지난 13일 인천 송도의 포스코건설에 대한 압수수색으로 포문을 열었다.
포스코건설은 베트남 지역 건설사업을 책임지던 임직원들이 현지 하도급 업체에 지급하는 대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번 압수수색은 이완구 총리가 대국민 담화에서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졌다. 특히 13일 압수수색이 진행될 당시 포스코는 주주총회를 열고 있었다.
검찰은 압수수색 직후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검찰은 또 압수수색 4일 만인 지난 17일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흥우산업 본사와 이 회사의 계열사 3곳을 압수 수색했다. 속도와 수위를 보면 사전에 짜놓은 각본이 펼쳐지는 듯했다.
흥우산업은 정준양 전 회장이 포스코 수장으로 재임했던 2009년 10월부터 베트남 노이바이 고속도로 공사 등에 참여해 거래대금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21일에는 포스코건설의 전 베트남법인장 박모 상무를 횡령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씨는 2009년부터 2012년 진행된 베트남 고속도로 건설사업과 관련해 하청업체에 지급하는 공사대금을 부풀려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40억여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4일 박 상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이르면 이번주 비자금 조성 혐의의 핵심인물로 지목되는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을 불러 조사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포스코건설 압수수색 이후 비자금 조성과 사용 등에 정 전 부회장과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등 최고위 경영진이 개입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씨에 대한 추가 조사를 통해 비자금 조성에 정 전 포스코 회장이 관여했는지 여부와 함께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간 흐름을 살펴본다는 예정이다. 정준양 전 회장 등 그룹 수뇌부에 대한 소환조사는 불가피해졌다.
대표적인 'MB맨'으로 꼽혔던 정준양 전 회장은 포스코 회장 선임 당시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영포라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들이 포스코 회장 선임과정에서 면접을 보는 등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기정사실처럼 퍼져 있다. 때문에 재계에서는 이번 검찰 조사가 MB정권 실세로 군림하던 영포라인을 정조준한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포스코건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시작된 13일 오후 검찰 수사관들이 인천 연수구 포스코건설 사옥에서 압수품을 옮기고 있다.ⓒNews1
◇성진지오텍 인수합병 특혜 논란
정준양 전 회장이 포스코 회장으로 취임했던 2009년 2월, 당시 35개에 불과하던 포스코 계열사는 3년 후인 2012년 3월 70개로 급격하게 늘었다. 여기에는 2010년 3월 포스코가 인수했던 성진지오텍도 포함됐다.
당시 포스코는 성진지오텍 지분 40%를 시장 가격보다 40% 이상 비싸게 사들이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인수 당시 성진지오텍은 2년째 적자를 기록했고, 부채비율이 1600%가 넘는 부도 직전의 상황이었다. 성진지오텍의 회계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능력에 유의적 의문을 제기한다'는 부정적 감사의견을 냈다.
그런데도 시장 평가액보다 비싼 돈을 주면서까지 인수를 강행한 무리수를 둔 배경에는 MB정권 실세와의 연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게 검찰 판단으로 보인다. 특히 포스코는 전정도 성진지오텍 회장의 지분에 대해서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붙여 인수 전 3개월 평균 주가(주당 8271원) 대비 2배에 달하는 금액(1만6331원)을 지불했다.
1989년 성진지오텍을 세운 전정도 회장은 울산 지역 정·재계 인사들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당발’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 등 정권 실세들과의 친분도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MB정권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남미 순방길에 동행하면서 특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당시 성진지오텍은 연간 2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중견기업으로, 재계에서는 의외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해외 제철소 건설과정에서도 비자금 조성 의혹
베트남 포스코건설에 이어 포스코도 해외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하청업체를 이용해 비자금을 만들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인도네시아 일관제철소인 크라카타우포스코는 정 전 회장이 재임 당시 가장 공을 들인 사업이다. 당시 제철소 공사에는 포스코건설을 비롯해 포스코그룹 계열사들이 대거 동원됐다.
검찰은 제철소 건설과정에서 하청업체가 용역비를 부풀려 1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했고, 이중 10억원 가량이 포스코 최고위층 임원에게 전달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영남 지역에 기반을 둔 해당 건설업체 대표는 영포라인 등 MB정권 실세들과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검찰은 포스코의 석탄처리 기술 개발 과정에서 석탄 22만톤(500억원 상당)에 대한 분식회계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같은 비자금 조성이 정 전 회장의 지시 하에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비자금이 국내로 유입됐는지, 또 비자금의 구체적 사용처가 어디인지 등에 대해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한편 정치권에서는 이번 포스코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자원외교 국정조사와 함께 MB 정권 숨통을 조이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찰 출신의 이완구 총리가 기획, 박근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시작됐으며, 다목적의 포석을 띠고 있다는 게 정계 관계자들의 견해다.
부정부패, 비리와의 전쟁을 통해 민심의 추가적 이반을 막는 한편 공직사회 기강도 바로 잡으려 하는 목적 아니냐는 얘기다. 물론 연합군 형태를 띤 새누리당 당권파에 대한 각개격파 성격도 짙어 보인다. 사정의 칼날을 통해 권력의 매서움을 보여줌으로써 더 이상의 항명은 용서치 않겠다는 암묵적 경고를 날렸다는 게 당내 지배적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