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준호기자] 중국과 러시아가 올해 2차 세계대전 승리 70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행사를 통해 동북아시아 정세를 이끌고 있다.
‘나치즘·파시즘을 무너뜨린 역사를 기리자’는 거부할 수 없는 명분을 내세우며 각국 정상들을 초청하고 있다.
그렇잖아도 미국과 중국·러시아 사이에서 입장이 난처한 한국은 ‘김정은 변수’까지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시험 문제를 받아 들었다.
◇‘김정은 초청’ 카드 내민 중국과 러시아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국방위원회 김정은 제1위원장을 초청함으로써 정세를 주도하는 첫 번째 수를 놓았다. 다른 나라 정상들에게 ‘우린 김정은을 불러야겠는데 너희는 어떻게 할래?’ 질문을 던진 셈이다.
지난 14일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 대변인은 9월 ‘2차 대전 승리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김 위원장을 초청했다고 확인했다. 더 적극적인 러시아는 지난 1월 이미 ‘북한 측이 오는 5월 9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2차 대전 전승행사에 김 위원장의 참석을 확답했다’고 밝힌 바 있다.
북한은 아직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는 김 위원장의 참석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과 만나는 자리에서 김 위원장의 참석을 기대하고 있다고 바람을 넣었다.
◇김정은 위원장, 다자 정상외교 무대 나설까
러시아 행사가 20일 남짓 앞으로 다가오면서 김 위원장이 과연 모스크바를 방문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했지만, 다자 정상외교 무대에 최고지도자가 참석한 적이 없는 북한으로서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참석할 경우 세계인들의 이목은 서른 살 안팎의 김 위원장에게 집중될 것이다. 김 위원장 본인과 북한은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막판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지도자의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김 위원장이 행사장에 전격 등장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는 북한 전문가들도 있다.
또 모스크바 행사 참석 여부와 상관없이, 9월 베이징 행사에 갈 가능성은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1년 집권 후 처음으로 중국으로부터 받은 초청을 저버리기 힘들다.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고 있다. ©뉴시스
◇2중, 3중의 고려 필요한 박근혜 대통령
모스크바 행사에는 직접 참석하지 않고 특사를 보내기로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베이징 열병식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현실적으로 대 중국 관계를 더 중시할 수밖에 없는데, 중국이 모처럼 마음먹고 하는 행사에 대리인을 보낼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참석하고 김정은 위원장도 나타날 경우, 두 정상이 어떤 모양새로 만나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의 참석 결정에 있어 최우선 고려 사항은 김정은 위원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 중국은 2차 대전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도 초청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일본은 이제 상대가 안 된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 역시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다. 동북아 주요국 정상들이 모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 보다 정치적인 의미가 더 짙은 행사인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