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이 숙청됐다는 국가정보원 발표의 문제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만약 숙청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되더라도 국정원의 허물이 가려지진 않는다. 국정원의 발표에는 모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었고, 국가 안보를 지키라고 만든 정보기관이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지난 13일 숙청 발표에는 국정원의 저의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여럿이었다. 하이라이트는 현영철 숙청 이후 북한 내부의 분위기라며 밝힌 내용이다. “간부들 사이에서도 내심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북한 간부들의 내심을, 그것도 ‘확산되는 시각’을 파악했다니 참으로 전지전능한 국정원이 아닐 수 없다.
국정원이 ‘공개처형 형식으로 총살됐다’는 첩보를 공개한 대목도 문제였다. 첩보는 정확한 분석과 확인 끝에 정립된 정보가 아니라 ‘확인되지 않은 소식의 조각’에 불과하다. 이걸 공개하는 건 정보기관의 정도가 결코 아니다. 설령 정보 수준으로 확정이 됐더라도 통일부나 다른 부처의 이름으로 발표하게 하거나 언론에 흘려주는 것이 정상적인 정보기관의 모습이다. 섣불리 내놓은 첩보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될 경우 국가 최고의 정보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신뢰도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국정원이 그리 나서면 북한 내부의 정보를 가져다주는 사람들이 위태로워져 결국 국정원의 정보력이 약해진다는 점도 큰 문제다. ‘알아도 모른 척, 몰라도 아는 척’ 해야 상대방이 겁을 먹는다. 정보기관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나 적용되는 이치다. 긴가민가하는 첩보를 발설해 버리면 허점만 노출시킬 뿐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국정원이 무리수를 뒀기 때문에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것이다.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언론의 행태다. 어쨌든 국정원은 ‘숙청은 정보이고 공개처형은 첩보’라고 분명히 구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언론들은 처형 첩보가 사실인 양 제목을 뽑고 기사를 썼다. 기사 제목에 큰 따옴표를 붙임으로써 자신들이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국정원의 주장임을 표시했지만, 그런 잔재주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첩보를 공개해버린 국정원도 문제지만, 첩보라고 했는데 정보인 것처럼 쓴 언론이 어쩌면 더 문제다. 국정원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한발 더 나가는 언론들이 있는 한 북한 관련 소식으로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세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황준호 통일외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