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짱) '승부사' 정용진 VS '광폭 행보' 정지선

정지선 회장, 은둔 접고 M&A로 존재감 입증
정용진 부회장, 실질적 경영 나선 홀로서기 첫해
백화점·아웃렛 이어 면세점서 제대로 붙었다

입력 : 2015-05-25 오후 5:53:54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은 모두 대한민국 유통업계를 대표하는 오너 3세로 꼽힌다. 4살 터울의 경복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수장은 백화점 사업과 아웃렛 사업에 이어 이번에는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을 두고 다시 한번 맞붙게 된다.
 
경영멘토 구학서 회장이 물러나고 홀로서기에 나선 첫해를 맞는 정용진 부회장과 오랜 은둔생활 끝에 리바트와 한섬 인수를 계기로 존재감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 정지선 회장. 두 라이벌간의 자존심 경쟁에 유독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본격적인 공격경영과 홀로서기에 나선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왼쪽)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오른쪽)이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권 입찰을 두고 맞붙었다. (사진제공=뉴시스, 신세계그룹)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선대회장의 외손자인 정용진 부회장은 사회 안팎에서 유명세를 띄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 때 자사 제품의 사용기나 요리평을 공유하는 등 활발한 SNS 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지난 4월에는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중흥사업인 '2015 지식향연' 프로젝트의 첫 번째 강연자로 자신이 직접 나서 청년들의 인문학 멘토로 나서기도 했다.
 
이 같은 적극적인 활동은 대중들의 많은 관심을 모아 자신의 인지도와 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토마토CSR리서치센터가 지난 19일 발표한 '2015 대한민국 재벌 명성지수'의 '재벌2·3세 부문'에서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에 이은 4위에 올랐다.
 
정용진 부회장은 올해부터 본격적인 독자 오너경영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첫 행보로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자신의 오랜 '경영 멘토'였던 구학서 회장을 고문으로 퇴임시켰으며, 40대 후반~50대 초반의 젊은 임원들을 대거 기용했다.
 
1999년 신세계 대표이사에 오른 이후 10여년간 사실상 그룹 경영 전반을 책임져온 전문 경영인 구 회장을 내보낸 정용진 부회장은 올해 '홀로서기'를 시도하며 자신의 경영능력 시험대에 스스로 올랐다.
 
자신의 첫 시험이 바로 다음달 1일 마감되는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과감한 투자와 결단으로 신세계백화점 본점을 면세점 후보지 카드로 내밀었다. 올 초 인천국제공항면세점 7구역 운영권을 따낸 정용진 부회장의 연이은 강수다.
 
식음료 계열사 신세계푸드도 지난해 수제 맥주 '데블스 도어'와 한식뷔페 '올반' 등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신사업 전반을 자신이 직접 살피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원)이 서울 시내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한 신세계백화점 본점 전경. (사진제공=신세계그룹)
 
다음달 1일 접수가 마감되는 서울 시내면세점 입찰전에 뛰어든 정용진 부회장은 2곳이 배정된 대기업 시내면세점 부문에 경쟁사로 떠오른 6개사 중 가장 적극적이다.
 
면세점 부지 선전부타 파격적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14일 그룹 '업(業)의 모태'이자 1930년 세워져 85년 역사를 자랑하는 국내 최초의 백화점 건물인 본점 명품관(본관) 전체를 면세점으로 전환시키겠다는 선택을 감행했다. 그야말로 '심장'을 내놓았다.
 
그룹의 모태이자 국내 유통산업의 발원지인 본점 본관을 전격적으로 내놓게 된 것은 그만큼 그룹의 20년 숙원사업을 성사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와 자신감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 정용진 부회장의 승부사 기질을 뽐내는 선택이었다.
 
이미 영업 중인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과의 거리는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400미터에 불과하다. 본점 전체를 면세점으로 활용해 상대적으로 좁은 롯데면세점에서 길게 줄 서있는 중국인 관광객(유커)들의 발길을 돌리겠다는 전략으로 '면세점 강자'로 꼽히는 롯데면세점과도 크게 한판 붙어볼 자신이 있다는 정용진 부회장의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를 위해 본관 옆에 위치한 SC은행 건물도 매입해 각종 편의시설로 활용할 계획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높은 SC은행 건물은 1935년 세워진 근대 건축물로 외국계 은행 소유의 건물이었지만, 정용진 부회장은 지난 3월 850억원을 투자해 이 건물을 사들였다. SC은행 건물에는 다양한 고객 서비스 시설과 상업사박물관, 한류문화전시관 등을 설치해 본점 본관이 세계적 수준의 새로운 면세점 모델로 개발되도록 보완해 주는 용도로 활용할 계획이다.
 
본관 본점을 면세점으로 활용하면서 국내 1호 전통시장인 남대문 시장의 상권 활성화에도 앞장서겠다는 계획이다. 신세계면세점이 들어서게 되면 명동과 남대문시장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아 외국인 관광객들이 더 다양한 쇼핑환경을 누릴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칫 약점으로 드러날 수 있는 시내면세점 입찰 평가 중 '상생 항목'의 점수를 높이는 데 기여하겠다는 전략이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원)이 서울 시내면세점 후보지로 선정한 무역센터점 전경. (사진제공=현대백화점그룹)
 
36세의 젊은 나이에 현대백화점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정지선 회장은 그간 은둔형 경영으로 대외적인 노출이 잦지 않았다.
  
조용하던 정지선 회장은 40세가 되던 2011년부터 본격적인 공격경영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각종 M&A를 성사시켰다. 2012년에는 패션기업 한섬을 인수했고, 2013년 가구제조업체 리바트까지 인수하며 제조업으로 영역을 넓힌 것이다.
  
이렇게 덩치를 불린 정지선 회장은 본래 주력사업이었던 백화점과 홈쇼핑 사업의 강화도 꾀했다. 정지선 회장은 최근 5년간 현대백화점 킨텍스점, 대구점, 충청점, 디큐브시티점 등 4개 지점을 새로 출점했고, 무역센터점, 압구정본점 등 주요 지점을 리뉴얼했다. 하반기에는 현대백화점 판교점이 새롭게 문을 열 예정이다.
  
최근에는 아웃렛, 면세점 등 새로운 사업영역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5월 가산현대아웃렛을 열면서 아웃렛 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더니 지난 2월에는 김포에 프리미엄아웃렛을 처음 선보였다. 정지선 회장은 오는 9월께 서울 송파구 장지동 가든파이브에 도심형 아웃렛 2호점을 문을 열 계획이며, 2016년에는 인천 송도에 프리미엄아웃렛 2호점을 오픈할 방침이다.
 
일체 경험이 없던 면세점 사업에도 도전을 선언하며 큰 공을 들이고 있다. 정지선 회장은 최근 서울 시내면세점 후보지를 서울 상섬동 무역센터점으로 확정하고 중소·중견기업들과 합작법인을 만드는 등 면세점 사업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주력 사업과의 시너지 확대에도 힘쓰는 모습이다. 지난달에는 '현대렌탈케어' 법인을 새롭게 설립하며 렌탈·케어사업 진출을 꾀하고 있다. 그룹의 주력사업 중 하나인 홈쇼핑과의 시너지가 크다는 판단이다.
 
정지선 회장은 서울 시내면세점 후보지로 '강남'을 선택했다. 수년 전 부터 면세사업을 그룹의 신사업으로 정하고 준비에 나선 정지선 회장은 서울 시내면세점 후보지로 삼성동에 위치한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을 최종 확정했다. 무역센터점 2개 층을 리모델링해 강남권 최대 규모의 고품격 면세점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정지선 회장 역시 승부를 걸었다. 업계 1위 롯데면세점이 인근에서 이미 영업 중이며, 멀지 않은 잠실에서도 면세점 사업을 펼치고 있음에도 삼성동에 면세점 후보지를 선택한 과감성을 내보였다.
  
지난해 12월 'MICE(기업회의·포상관광·컨벤션·전시) 관광특구'로 지정된 코엑스 단지가 향후 강남지역은 물론 국내를 대표하는 최고의 외국인 관광명소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부분의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강남지역 유입이 급증하고 있음에도 서울 시내면세점이 강북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상황도 감안했다.
  
또 다른 승부수가 있다. 바로 중소기업들과 합작법인이다.
  
정 회장은 최근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운영을 위해 유통·관광 분야의 중소·중견기업 등이 주주사로 참여한 면세점 합작법인 '㈜현대DF'를 설립했다. 이번 시내면세점 입찰 참여 의사를 밝힌 대기업 중 중소·중견기업을 주주사로 참여시켜 상생 협력모델을 구축한 것은 현대백화점그룹이 유일하다.
  
백화점 30년 운영 노하우와 합작법인에 참여한 주주사들의 사업 경쟁력과 강점을 접목시켜 국내 면세점의 품질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합작법인에 주주사로 참여하는 기업은 모두투어네트워크, 서한사, 엔타스듀티프리, 현대아산, 에스제이듀코, 제이앤지코리아 등으로 모두 여행·호텔·면세점·패션업계에서 경쟁력을 갖춘 업체로 꼽힌다.
 
특히 정지선 회장은 면세점 투자비용 전액을 100% 자기자본으로 조달하는 등 무차입 경영을 통해 부채비율 제로(0)를 유지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정지선 회장은 면세점 사업을 그룹의 전략사업 중 하나로 정하고,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적극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번 서울 시내면세점 사업을 시작으로 향후 공항 면세점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해 대규모 투자와 고용 창출을 통해 경제활성화에도 기여한다는 방침이다.
  
이성수 기자 ohmytru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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