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 사옥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SK이노베이션
'SK 구조조정'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등장하는 문구다. 정 사장이 친정의 구원투수로 20년 만에 복귀한 올해 초. SK이노베이션은 유가급락의 직격탄을 맞아 휘청거리고 있었다. SK이노베이션의 핵심사업인 석유부문에서만 지난해 9989억원의 영업손실이 발생하며, 37년 만에 회사 전체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지난해 연말 인사에서 정 사장이 SK이노베이션 사장으로 선임되자 정유업계 안팎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정 사장은 SK그룹 내에서도 구조조정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던 터라 그가 곧 사업구조 재편에 착수할 것이라는 전망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취임 6개월 여를 앞둔 28일. 정 사장은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 사옥에서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처럼 더 열심히 하거나 인풋(input)을 하는 것으로는 당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면서 "사업과 조직구조 혁신을 통해 외부환경 변화에도 생존가능한 수익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말했다. 체질개선 차원에서 사업 재편에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다.
정 사장이 이처럼 사업구조 혁신을 강조하고 나선 것은 정유업계에 불어닥친 불황이 일시적 문제가 아닌 구조적 위기에서 비롯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유·석유화학의 주요 시장이었던 중국과 유럽의 경기침체와 선진국이 주도하고 있는 에너지·환경 규제, 미국 셰일오일로 촉발된 공급과잉 등 복합 요인들이 맞물려 전 세계 에너지 시장은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 사장은 현재 정유업계가 당면한 상황을 '알라스카의 여름'에 비유하며 "알라스카의 여름이 짧은 것처럼 정유업계도 석유사업에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기간이 점점 줄고 있다"면서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반짝 회복됐지만, 이는 구조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은 일시적 수급상황의 영향을 받은 데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2분기 역시 저유가와 정제마진 개선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하반기부터는 다시 '시계 제로'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 사장의 설명이다. 석유 수요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국과 인도에서 신규 정유시설 가동이 예정된 탓이다.
정 사장이 제시한 위기 타개책은 '인사이더(Insider·내부자)'와 '얼라이언스(alliance·동맹)'로 압축된다. 석유개발(E&P) 부문은 지난해 인수한 미국 오클라호마, 텍사스 소재 셰일광구를 인근 지역으로 확장하는 등 'U.S. 인사이더' 전략을 통해 북미 기반의 자원개발 전문회사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E&P 사업 인력의 절반을 이미 미국 휴스턴에 파견했으며, 향후 자산관리 기능을 제외한 운영 조직을 미국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또 현지에서 셰일오일 업체들 인수 기회도 엿보고 있다. 셰일오일 업체들은 현재 저유가 상황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서 채산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 SK이노베이션은 매물로 나온 셰일오일 업체들의 인수합병(M&A)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아울러 SK이노베이션은 한·중·일 정유 업체 간 협력 관계 구축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인도네시아 등 주요 수출 시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원료 확보와 석유제품 판매 등을 공동으로 펼친다는 구상이다.
시장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던 전기차 배터리 사업 철수설에 대해서는 일축했다. 정 사장은 "전기차 배터리는 최고경영자(CEO) 취임이후 가장 먼저 투자 결정을 내린 사업"이라면서 "경쟁사 대비 규모는 작지만, 공장 운영효율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면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시장이 커지기 전까진 전기차 배터리에 '올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베이징기차와 국내 현대기아차를 이미 수요처로 확보했으며 유럽의 한 완성차 업체와도 현재 수주량의 3배에 달하는 배터리 물량을 확보한 상태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