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6월 22일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국교를 정상화한지 50년 이래 최악의 상태인 한·일관계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방일을 계기로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윤 장관의 이번 일본 방문은 박근혜 정부 외교부 장관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는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4월 말 방일을 계획했지만, 그 직전 아소 다로 부총리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자 일정을 취소했다. 21일 도쿄에 도착한 윤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 회담했다. 22일에는 아베 신초 총리를 예방한 후 주일 한국대사관이 주최하는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 리셉션에 참석한다.
이번 한·일 외교장관회담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의 최종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애초부터 그 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양국 간 쟁점들, 특히 위안부 문제는 정상 차원의 정치적 결단이 있기 전에는 해결되기 힘들 정도로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 장관이 아베 총리를 만나 박근혜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가능성은 있다. 서울에서의 국교정상화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하는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도 아베 총리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양국은 일본 민주당 집권 시절인 2012년 3월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사무차관이 제시한 ‘사사에안’을 토대로 총 8차례의 국장급 실무협의를 해왔다. 2012년 일본 정부는 ▲노다 총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해 사죄하며 ▲일본 정부의 예산으로 피해자를 보상한다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당시의 거부 이유가 명확히 알려져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도 사사에안을 그대로 수용할 수 없고, 후퇴한 내용이라면 더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위안부 문제에서 상당한 진전이 있고, 협상의 마지막 단계에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오히려 정부의 운신 폭을 좁혔다. 박 대통령의 섣부른 발언을 ‘사실’로 만들기 위해 일본에 양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반면 민주당 정부보다 보수적·우파적인 아베 정부는 사사에안에도 못 미치는 합의를 원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18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아베 총리의 사죄와 일본 정부의 피해자 재정지원에 상응해 ‘위안부 문제가 최종 해결됐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보증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위안부와 관련된 법적 문제는 종결됐다’는 기본 방침을 고수해 왔는데, 아베 총리가 다시 한 번 사죄하는 만큼 ‘앞으로 더는 거론하지 않겠다’는 한국 대통령의 약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 해결 보증의 징표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의 철거를 요구한다.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양국 간 쟁점에 대해서는 이번 회담과 국교정상화 기념식 이후에도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양국 정부는 그 과정을 거치며 자국 내 여론을 살피면서, 최종 타결이 가능하다고 판단할 경우 정상회담을 통한 담판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정상회담의 주요 변수는 8월 종전 70주년을 맞아 아베 총리가 발표할 담화의 내용이다. 1995년 무라야마 담화에 있던 ‘침략’ ‘식민 지배’ ‘반성’ ‘사죄’ 등의 표현이 아베 담화에도 들어가는지에 따라 정상회담 시기 등이 조율될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 15일 홍콩 <봉항TV> 인터뷰에서 담화에 ‘반성’을 포함시키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그러나 ‘식민지배’ ‘침략’ 등을 언급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아, 결국 진정성이 의심되는 담화가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