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안정, 핵무기 추구, 경제 발전이라는 김정일 정권의 전략적 목표는 상호 모순적이다. 그 모순과 딜레마는 남북관계에도 적용된다. 핵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과 얼마나 전면적인 대화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현인택)
이명박 전 대통령의 외교·안보분야 핵심참모였던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과 김태효 전 청와대 대외전략기획관이 ‘남북대화를 하려면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해야 한다’는 이른바 선(先)핵폐기론은 옳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명박 정부가 선핵폐기론을 고수한 탓에 남북관계가 단절되고 북핵 6자회담이 중단돼 결국 북한의 핵 능력만 커졌다는 비판이 수없이 나왔지만, 자신들의 정책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국가보훈처·한국정치학회 공동 주최로 지난 17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한반도 분단 70년의 원인과 과제’ 학술회의에 나란히 나온 현 전 장관과 김 전 기획관은 한목소리로 ‘북한에 대한 본질적인 목표’라는 표현을 썼다. 김 전 기획관은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은) 임기 내에 결과를 내려는 조바심으로 서두르게 되고 본질적인 목표를 일부 양보하고 차선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 성과’에 연연하지 않고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일관된 태도를 취했다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시작된 남북관계의 단절을 합리화하는 논리를 편 셈이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만든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최 교수는 “북한에 강경하게 원칙을 가지고 나가야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 문제의 출구를 마련해 보고 기회의 창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자신이 입안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바로 그러한 뜻에서 만들어진 정책이란 것이다. 최 교수는 자료집에서도 “보수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비핵·개방·3000이 결과적으로 남북관계의 파탄을 가져왔다는 비난을 감내해야 한다”면서 “박근혜 정부 역시 신뢰를 쌓기 위해서는 (북한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충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 캠프의 외교·안보팀을 이끌었던 김기정 연세대 교수는 “북핵 문제만을 강조할 경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는 경직된 사고가 만들어질 수 있고, 남·북의 다양한 문제들이 풀리지 않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효 전 기획관의 대북 강경파적 면모는 여러 대목에서 나왔다. “북한의 핵 능력이 어느 정도이건 소용이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가 핵 억지력을 갖춘다든지…요즘 쟁점이 되는 한국의 핵·미사일 방어 능력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 논의에서도 돈이 얼마나 들고, 한·미가 얼마씩 분담하고, 중국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본질이 아니다. 우리를 지키고, 북한이 오판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놓지 말아야 한다.”
김 전 비서관은 또 천안함 사건 후 내려진 5·24 대북 제재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반론을 폈다. “지금 5·24 조치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논의는 우리가 처방을 내려야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잊어버리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울러 그는 “박근혜 정부도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며 “북한 주민들에게 좋은 정보나 시장에서 필요한 물자 등을 공급하는 것은 평양의 엘리트들과 합의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추진할 수 있는 정책들”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기획관은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 미국의 강경한 대외정책을 이끌었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과 유사하다는 의미로 ‘한국의 네오콘’이라고 불린 적도 있다. 하지만 북한은 2011년 김태효 당시 기획관이 북측 당국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돈봉투를 건네며 자신들을 설득하려 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였던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한 후에라야 ‘핵을 가진 북한과는 대화할 수 없다’고 얘기할 수 있다”라며 이명박 정부식 선핵폐기론을 반박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이 전 장관은 “(최대석 교수 등) 신뢰프로세스를 만든 사람들이 낙마하고 북핵 문제가 발생하는 여러 상황이 벌어지면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내용을 그대로 채웠다”라며 “결과적으로 5·24 조치가 현 정부의 대북정책 전부를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북한이 아무리 어렵고 까다롭고 도전적이고 호전적이라 해도 북한을 잘 관리해 남북 협력을 해야만 ‘통일 대박’이 가능하다”라며 “정책 전환의 기본은 대북 압박은 통하지 않는다는 냉철한 평가와 판단”이라고 강조했다.
최대석 교수도 대북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임을 인정했다. 최 교수는 “북한과 언제까지 수싸움만 할 것인가”라며 “5~6년 넘게 남북관계가 교착되어 있는데 좋건 싫건 지혜를 모아 대북정책의 문제점을 진단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체제에 대해서도 최 교수는 “실제로 존재하는 정권이다. 다른 대화를 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이 북에는 없다”며 “앞으로 뭘 하든 김정은 정권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에서 외교·국방·통일분과 인수위원을 하던 중 알 수 없는 이유로 사퇴한 후 현재까지 정부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