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수효과는 없다…'작은배'를 띄워라"

IMF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글로벌 관점에서' 보고서 발간
상위 20%의 부가 1%P 늘면 GDP는 0.08%P 줄어
하위 20%의 재산 1%P 증가는 GDP 0.38%P 기여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아…아래에 집중하자

입력 : 2015-06-28 오전 11:00:00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 정부가 투자 증대를 통해 소수의 대기업과 부유층의 부(富)를 늘려주면 그 혜택이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에도 돌아가고, 종국에는 국가의 경제성장률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한다는 경제 이론이다. 과거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세계 많은 국가들이 이를 근거로 대기업 중심의 성장 정책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상과 실제는 달랐다. 짧은 기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성장의 과실은 일부에만 국한됐다. 선진국은 물론 신흥 개발도상국과 저개발국가에서도 소득불평등은 점차 심화됐고 전세계적인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자넷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 프란치스코 1세 교황 등이 입을 모아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도전 과제"라고 언급할 정도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이 발간한 연구원토론보고서도 이 같은 소득불평등 현상에 대한 일갈이다. '소득불평등의 원인과 결과: 글로벌 관점에서'란 제목의 이 보고서는 부의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으며, 고소득층의 재산 증가는 되레 경제성장률의 하락을 불러온다고 지적했다. 소득불균형은 사회의 결속력을 떨어뜨리고 상호 신뢰도 깨트리며, 장기적으로 지속될 경우 대공황이나 금융위기와 같은 혼란을 초래한다고도 일침했다.
 
이와 관련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작은배를 띄우는데 세계 각국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부유층을 대형 요트에 빈곤층과 중산층을 작은배에 비유해 다가오는 시대에는 크고 호화스러운 요트보다는 작은 파도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소형 보트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지난 17일 브뤼셀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대형 요트(부유층)보다는 작은배(중산층·빈곤층)에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로이터)
 
라가르드 총재는 영국의 비영리 빈민구호단체인 옥스팜의 통계를 인용해 2016년에는 전세계 상위 1%의 부자들이 가진 자산이 나머지 99%가 가진 것보다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 환경이 점차 나아지고는 있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다지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것. 그는 "과도한 소득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은 도덕적, 정치적으로 적절한 행동일 뿐 아니라 '착한 경제'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전했다.
 
IMF의 이번 보고서는 불평등을 유발하는 요인들을 짚어내며 정책입안자들이 빈곤층과 중산층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각자의 처한 현실에 따라 어떠한 방식들을 선택할 수 있는지 길을 제시한다. 
 
◇소득불평등은 사회악인가
 
적당한 수준의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삶을 위해 경쟁하고 투자하고 노력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요인이 된다. 예를 들면 교육 수준에 따라 근로 소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교육에 대한 욕구를 키우게 되고 혁신과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불평등이 장기적으로 지속되고 그 정도가 심화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동등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불평등한 상황이 나타날 경우 많은 사회적 비용이 유발된다. 불평등이 만연한 사회에서 개인은 자신의 능력을 공공의 이익이 아닌 나만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경향이 높아진다. 자원의 부적절한 분배, 부정부패, 족벌주의 등이 발생하는 배경이다. 이 경우 시민들의 자신감은 위축되고 사회의 결집력도 약해진다.
 
◇국가 내 소득불평등 변동 추이.(자료=IMF)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은 앞선 IMF 연구를 포함한 여러 통계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다. 지니 계수가 높을 수록 사회의 생산성이 낮다는 것이 대표적인 사실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지난 5년간 소득 점유율 상위 20%의 부가 1%포인트 늘어날 때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0.08%포인트 감소한다는 점을 도출해냈다. 반대로 소득 점유율 하위 20%의 부가 1%포인트 늘어나면 GDP 증가율은 0.38%포인트 증가했다.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 증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과거 많은 사례에서 봐 왔듯이 소득불평등은 투자를 위축시키고 경제, 금융, 사회적 안정을 깨뜨린다. 정책적으로도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세계화와 시장 지향형 개혁에 반대하는 보호주의자들의 목소리를 높여줄 수 있으며 경제 자유화에 대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출발의 차이, 결과의 차이
 
불평등은 크게 소득과 재산의 차이를 유발하는 결과의 불평등과 교육, 의료, 금융 등 기초 사회 서비스에도 접근할 수 없는 기회의 불평등 두 가지로 나뉜다. 먼저 결과의 불평등을 살펴보자면, 전세계는 여전히 상대적으로 높은 불평등한 상태에 놓여있다. 1990년에서 2010년까지 약 20년 동안 전세계 지니계수는 0.55에서 0.70 사이를 오갔다. 인도와 중국 등 신흥국의 경제 성장이 가속화되면서 잠시 완화되는 추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 기간은 국가 내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선진국과 신흥개발도상국 모두 빈부 격차가 커졌다. 선진국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소득의 10%를 차지했다. 그 중 절반 가량은 노동 소득이 아닌 투자 수익과 같은 자본 소득이었다. 신흥국은 경제 성장으로 상위 중산층이 부유층으로 진입하며 불평등이 심화됐다. 이는 다시말하면 중산층이 쪼그라들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경우 급격한 경제성장에도 대부분의 인구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상위 1%에는 전체 부의 약 3분의1이 집중되고 있다.
 
소득보다 부의 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현재 전세계 부의 절반에 해당하는 110조달러가 상위 1% 인구에 집중돼 있다. 하위 50% 인구가 소유한 부의 65배에 상응하는 규모다. 1980년과 비교해 상위 1%의 부 기여도는 증가한 반면 하위 90%의 기여도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임금 증가율이 높지 않아 저축을 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도약을 위한 발판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상위 1%와 하위 90%의 부 기여도 변화.(자료=피케티, IMF)
 
출발선을 다르게 만드는 기회의 불평등은 의료, 교육, 금융 서비스 등에서 발견된다.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의 차이는 대개 개발도상국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난다. 이들 국가에서 빈곤층의 1세 미만 유아 사망률은 부유층의 두 배에 이른다. 여성 사망률도 저소득층에서 더 높이 나타난다. 선진국도 불평등한 의료서비스 이용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데, 소득이 낮을 수록 기대 수명이 짧은 것으로 조사됐다.
 
교육서비스의 불평등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에서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개발도상국에서는 저소득층 어린이의 진학률이 현저히 떨어질 만큼 교육에 대한 접근성은 확대됐지만 소득 기여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선진국의 교육 불평등은 지난 10여 년간 별반 달라지지 않았는데, 대학 등록금과 같이 교육에 소요되는 비용이 가계 소득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금융서비스의 경우 선진국은 성인의 80% 이상이 정규 금융기관의 계좌를 갖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신흥 개발도상국은 이 비율이 절반도 되지 않았다.
 
◇무엇이 불평등을 만드나
 
소득불평등의 원인으로는 기술진보, 무역과 금융의 세계화, 노동시장 제도의 변화 등이 꼽힌다. 지난 40여 년간 인류는 기술 발전을 통해 교통 비용을 줄이고 자동화를 실현시켰으며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극대화 했다. 이 결과 새로운 시장이 열렸고 성장의 기회가 발생했으며 수 백만명의 사람들이 절대 빈곤 상태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불평등을 높이는 배경이 됐다. 기술에 대한 노동자의 숙련도에 따라 중요도도 달라졌던 것인데, 첨단 기술의 발달과 자동화는 비숙련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았다. 이는 선진국과 신흥 개발도상국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 보편적 추세다.
 
경쟁력을 촉진하고 효율성을 높여 많은 국가들의 성장 동력이 됐던 무역이 세계화를 실현시키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국가간 무역과 금융의 활발한 흐름은 기술 진보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지만 소득불평등을 야기하는 것도 피할 수 없었다. 무역의 개방성은 기술 프리미엄을 높이지만 수입 가격을 낮춤으로써 실질 임금 증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비숙련 노동자에게 복합적인 영향을 미쳤다.
 
금융의 세계화는 소득불평등에 보다 명확한 원인을 제공한다. 자본의 효율적인 국제 분배를 유도하고 글로벌 리스크 쉐어링을 촉진하는 금융의 세계화는 외국인직접투자(FDI)란 방식을 통해 고숙련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기술을 발전시킨다. 이들의 임금 협상력이 높아짐은 당연하다. 반대로 비숙련 노동자는 협상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변화는 선진국에서 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노동시장 제도가 유연할 수록 경제의 역동성은 강화된다. 보다 생산적인 기업으로 자원이 재배치되고 기업의 구조개혁을 이루기에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질 수록 노동자는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는 것은 노동력의 이용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하고 이는 노동자의 교섭력을 낮추는 요인이 된다. 기술 수준이 낮은 저숙련 노동자일 수록 불리함은 높아진다. 중간 임금과 비교해 최저 임금을 삭감하는 것, 기간제 근로 형태의 비율이 높아지는 것 등은 모두 소득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며, 고용보호법률 개혁 등의 조치도 불평등 해소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은 소득불평등을 타파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어떤 직업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임금의 수준, 노동시장에서의 생산성 등이 달라지는데 교육을 통해 직업의 선택이나 일자리에 대한 접근이 차등적으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IMF 수석 경제학자를 역임했던 라구람 라잔 인도 총리는 "양질의 교육은 고소득층으로 가는 티켓임이 분명하지만 오늘날 다수의 중산층에서는 부담스러운 길이 됐다"고 말했다. 
 
선진국의 발전 역사를 보면 정부는 공공정책을 통해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고자 했다. 누진세나 공공퇴직연금 등이 대표적인 수단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소득불평등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 몇 십년 동안 과세 제도는 고소득 가구와 기업이 더 낮은 세율을 부담하는 구조로 변화해 왔기 때문이다.
 
◇꼭대기가 아닌 바닥을 보자
 
소득불평등 문제를 푸는 하나의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빈곤층의 소득 점유율을 높이고 중산층이 더 이상 쪼그라들지 않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옳지만 국가별로, 소득계층별로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세계은행의 최근 보고서에서도 사회적, 심리적 관점에 입각해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평등을 추구한다고 효율을 버리라는 것도 적절치 않다. 소득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효율성을 떨어뜨릴 필요가 없다. 이 두 가지 가치를 조화롭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빈곤층과 중산층의 소득 점유율을 높이는 동시에 경제 성장을 이끄는 데에는 재정정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거시재정의 안정성을 확립해 사회적 약자에게 불평등한 위험을 피하거나 최소화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선진국에서 사용하고 있는 재산세와 부동산세보다 강력한 소득 재분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방안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세금 회피의 가능성을 줄이고 선별적인 사회 복지 제도를 사용하자는 것인데, 이미 몇몇 국가에서는 노동소득세율을 낮추고 스톡옵션, 이자소득 등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를 높이는 것으로 평등을 실현코자 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교육과 의료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보다 효율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유도하자는 것이다. 교육의 질을 개선시키는 것, 고등 교육에 대한 금융 장벽을 제거하는 것, 인턴십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높이는 것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발도상국 정부는 기초 교육에 대한 동등한 접근을 촉진하고 중등, 고등 교육에 대한 수용도를 높여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잘 설계된 노동 정책과 제도는 불평등을 감소시키면서도 효율성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다. 노동시장의 결점과 일자리 창출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실패를 줄이는 것은 빈곤층과 중산층 노동자를 지원하는데 도움이 된다. 적절한 수준에서 최저 임금을 설정하는 것, 일자리와 기술 매칭 지원에 지출을 하는 것, 어린 노동자나 이주 노동자와 같이 취약 계층을 보호해 노동시장의 이분화를 줄이는 것과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전일제 노동자도 가계의 빈곤을 털어내기에 충분한 임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다 생산적으로 보상이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핵심이다.
 
경제 성장과 소득불평등 해소를 상호보완적으로 풀어가야 한다. 평균적인 삶의 기준 향상을 목표로 하는 개혁은 소득 분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평등을 타파하는 것은 노동시장, 사회적 부, 금융 통합, 과세제도 등과 같은 단순한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세계화와 기술적 변화의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는 요인을 통해 혁신을 고무시키고 경쟁과 기술 보급을 억제하는 부담스러운 정책들을 줄여야 한다. 신흥 개발도상국은 농업생산성을 높이고 자본의 급속한 축적을 유도하며 노동집약적 영역의 기술 보급을 높이는 것을 통해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꾀할 수 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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