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애신기자]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가 1년 4개월 만에 하이엔드 미러리스 카메라 'X-T10'을 내놨다. 후지필름이 자신있게 내놓은 두 번째 야심작이다. X-T10과 XF18-55mm 렌즈를 지난 19일부터 26일까지 일주일 동안 사용해봤다.
X-T10 외관 사진/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우선 외관만 봐서는 클래식한 느낌이 강하다. X-T10을 가지고 다니는 동안 지인들 "이거 필름 카메라야?", "고급스럽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전작인 X-T1을 계승했다.
X-T10이 필름카메라를 연상케 하는 주요인은 상단 다이얼에 있다. 바디 상단에는 셔터스피드, 노출보정, 드라이브 모드가 자리하고 있다. 다소 복잡해보이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 모든 것들이 사진가를 배려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풍경' 모드로 촬영한 들꽃. 초점이 맞춰진 앞쪽 꽃 외에는 아웃포커싱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사진/ 임애신기자
아마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싶은데 그러기 위해선 카메라 전원을 켠 후 메뉴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설정을 해야 한다. 이 작업을 마치고 나면 당초 찍으려던 장면은 이미 흐트러지고 만다.
X-T10은 전원을 켜지 않고도 다이얼을 조작해 바로 촬영이 가능하다. X-T10을 사용하는 동안 AE-L(노출고정)과 AE-F(초점고정)도 요긴하게 쓰였다. 두 모드를 사용하면 같은 환경에서 찍었을 경우 어떤 사진은 어둡게 나오고 또 어떤 사진은 지나치게 밝게 나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아트필터 중 '팝' 모드로 촬영한 대문. 녹슨 대문 위에 페인트를 덧발라 색감이 다양하다. 사진/임애신기자
뷰파인더가 장착된 것도 장점이다. 0.62배율의 236만 화소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전자식 뷰파인더는 시야율 100%로, 0.005초 디스플레이 타임랙을 지원한다.
디지털 카메라 경량화 추세에 맞춰 휴대성도 대폭 강화됐다. 전작인 X-T1에 비해 크기가 27% 더 작아졌으며 무게도 59그램(g) 줄었다.
후지필름하면 필름 시뮬레이션을 빼놓을 수 없다. 필름 시뮬레이션은 후지필름의 필름 발색을 재현하는 기능이다. 설정에 따라 이미지의 콘트라스트와 선명도 등이 다르다. 흑백 컬러 필터 옵션까지 지원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필름 시뮬레이션 모드에는 사진 필름의 색상과 색조가 담긴 11가지 모드가 있다. 사진/임애신기자
미리 설정해놓으면 셔터를 누르면 한 번에 세 번 촬영이 되기 때문에 어떤 필름모드로 설정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촬영할 땐 찰나를 잡고, 선택은 촬영 후 하면 된다.
후지필름의 약점으로 지적된 오토포커스(AF)도 개선됐다. 후지필름 일렉트로닉 이미징 코리아 설명에 따르면 X시리즈 중 AF 기능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X-T10은 기존 49개의 정점(싱글 포인트) 외에 77개의 초점영역에서 움직이는 피사체를 포착하는 '영역', 광각/추적'이 추가됐다.
드라이브모드 중 고속연사(CH)로 설정한 후 촬영했으나 빠르게 움직이는 피사체를 완벽하게 또렷하게 잡아내진 못했다. 사진/임애신기자
드라이브 다이얼에도 연속촬영 모드가 두 개나 담겼다. 8.0fps의 고속연사(CH)와 3.0fps의 저속연사가 바로 그것. 조도가 높은 곳은 문제가 없었으나 빛이 적은 실내에서는 초점이 명확히 맞지 않는 듯했다. 고속연사로 움직임이 빠른 강아지를 찍었을 때도 초점이 완벽하진 않았다.
드라이브 다이얼에는 사진 위에 또 다른 사진을 겹쳐 촬영하는 다중노출기법도 포함됐다. A 장면을 촬영한 후 B를 찍으면 A와 B가 겹쳐지는 형식으로 합성된다. 개인적으로는 X-T10에서 이 모드의 사용빈도가 가장 낮았다. 언제 어디에 써야하는지 애매했다.
다중노출로 촬영할 경우 먼저 인형을 찍는다. 그리고 나면 LCD 화면에 두번째 사진을 찍을거면 OK를 누르라고 나온다. 누른 후 두번째 피사체인 구두를 촬영하면 맨 아래 사진처럼 저저로 합성돼서 저장된다. 사진/임애신기자
아트필터에는 로모, 미니어처, 팝 컬러, 하이키, 로우키, 다이나믹 톤, 소프트포커스, 포인트컬러 등 8가지가 지원된다. 촬영 당시 분위기가 상황에 맞춰 원하는대로 설정하면 된다.
이 모든 게 복잡하게만 느껴지는 초보자의 경우 상단에 있는 오토모드를 이용하면 된다. 자동모드 전환레버를 오토로 설정하면 카메라가 알아서 촬영 환경을 파악해 58가지 장면 중 최적의 설정을 선택해준다.
길거리에 버려진 가구를 '다이나믹 톤'으로 촬영했더니 마치 그림을 그린 듯한 느낌이 연출됐다. 사진/임애신기자
반면 최근 나오는 미러리스 카메라들이 기본으로 제공하는 것들이 지원되지 않은 점은 불편하게 느껴졌다.
액정 터치가 대표적이다. 갑자기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경우 액정을 터치함과 동시에 초점을 맞춰 사진을 찍는 게 익숙하다보니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손이 LCD 화면으로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X-T10이 전문가 집단을 타깃으로 하다보니 셀피 기능이 탑재돼 있지 않다. 찍어 줄 사람이 없는 경우 인물모드로 설정한 후 셀프타이머로 촬영하는 것으로 대신해야 한다. 하지만 최근 나오는 셀카 강화 카메라들과 다르게 피부결이 자연스럽고 사진 전체 톤과 조화를 이룬다.
구름 뒤에 해가 가려져 구름이 회색으로 보이는 실버라이닝. 로우키로 촬영. 사진/임애신기자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다닐 때 LCD 창을 허리쪽으로 하면 편하다. 하지만 렌즈를 안쪽으로 하는 게 기본이다. 렌즈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X-T10은 온/오프 레버가 밖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전원을 갑자기 켜야할 때 카메라를 안보고 직관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스트랩으로 어깨에 멜 때는 저절로 전원이 켜지는 경우가 있었다.
또 셔터버튼이 다이얼들 사이에 위치해 있는 데다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아 촬영시 다소 불편했다. 또 중간에 구멍이 있어서 손맛이 좋지는 않았다. 이는 기계식 릴리즈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가장 불편한 점은 X-T10과 스마트폰을 연동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 '후지필름 카메라 애플리케이션', '후지필름 사진전송', '후지필름 카메라 리모트' 등 애플리케이션(앱) 종류가 많아서 어떤 앱을 다운받아야 할지 헷갈렸다.
계단에 떨어진 낙엽을 소프트포커스로 촬영. 사진/임애신기자
결론적으로는 '포토 리시버'를 다운받아 연동하면 되는데, 주변에 카메라 와이파이보다 더 강한 와이파이가 있을 경우 접속 에러가 났다. 그래서 기존 와이파이 전원을 잠시 끈 후 접속을 시도해야 했다. 카메라 수신만으로 완전히 접속하기까지 5분 정도 시간이 소요됐다.
이쯤되면 후지필름이 왜 X-T10을 내놨는지 알 것 같다. X-T10은 X-T1보다 친절하다. X-T1이 순전히 전문가용으로 출시됐다면, X-T10은 사용자 저변을 넓히기 위해 휴대성과 사용성을 강화했다. 가격장벽도 낮췄다.
X-T10의 바디가격은 99만9000원, XF18-55mm 렌즈킷이 139만9000원이다. X-T1이 각각 149만9000원, 199만원9000원인 것에 비해 비용 부담이 줄었다.
대중적인 미러리스 카메라가 60만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여전히 비싸지만, 후지필름이 카메라 고객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펌웨어 업데이트를 진행하는 점을 감안할 필요도 있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오토'모드로 촬영한 골목길 고양이. 사진/임애신기자
속도가 중요한 세상에 살다보니 사진찍는 행태도 바뀌었다. 스마트폰으로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진이 찍히는 시대가 열렸지만, 후지필름은 사진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사진을 통해 과거를 추억하는 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메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더라도 X-T10을 만지작 거리다보면 셔터스피드, 조리개, 감도(ISO) 등 사진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서서히 깨달아가고, 사진찍는 즐거움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임애신 기자 vamos@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