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경력법관 임용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재야법조계가 사법부를 본격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다. 사법부의 정책에 대한 성명서나 연말 법관평가 등 기존 소극적 방식에 더해 최근 선제적이거나 공세적인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협회장 하창우)는 지난 9일 성명서를 발표하고 민일영 대법관의 후임으로 강재현 변호사(56·사법연수원 16기), 김선수 변호사(55·17기)를 추천했다. 대한변협은 성명서에서 "대법원은 법관 일색으로 구성되어 보수화 되고 국민의 다양한 이해와 사회적 가치를 대법원 판결에 담아내는 데도 실패했다"며 "국민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도록 순수 재야 출신 변호사가 대법관에 임명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한변협은 그동안 서울변호사회 등의 추천을 받아 대법관 후보를 추천해왔지만 대법원 구성의 획일성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대법관 후보를 공개 추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한규 서울변호사회장도 지난 10일 SNS를 통해 김선수 변호사를 대법관 후보로 변협에 추천했다고 밝혔다.
앞서 서울변호사회는 지난 29일 변호사법 위반 의혹을 받고 있는 재판연구원 출신 A변호사(현 판사)를 단기 경력법관으로 임용하기로 한 것에 대해 재검토를 촉구하는 항의서를 대법원에 전달했다. 평판사 임용에 대해 변호사 단체가 공개적으로 항의서한을 전달한 것 역시 극히 이례적이다. 그러나 대법원이 지난 1일 A변호사를 경력법관으로 임명하자 당일 서울변호사회 사무총장인 변환봉 변호사(39·사법연수원 36기)가 개인자격으로 A판사를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변협과 서울변호사회가 '사법부 견제'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 회장과 김 회장 모두 취임 전·후 사법부나 사법정책에 대한 개혁을 외쳐왔다.
특히 하 회장은 변협회장 선거 당시부터 외부로부터의 사법개혁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가 문제가 많지만 전혀 개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며 "변협은 사법부가 움직이지 않는 사법개혁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하며 그것이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 역시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로스쿨 제도와 판·검사 임용 과정의 불투명함을 지적하면서 "학벌, 스펙과 집안 재력으로 법조인이 되는 것은 옳지 않다. 노동으로 땀을 흘려보고 고생해본 사람이 판·검사를 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반응은 갈리고 있다. 재야법조계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중론이다. 오래 전부터 대한변협 회무를 보아온 한 변호사는 "법원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던 변호사들이 적극적인 방식으로 나서는 것은 외부로부터 사법개혁의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는 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법원 내부는 말을 아끼면서도 불편한 표정이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판사는 "뭐라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면서도 "법관 인사는 사법부 고유권한이며 독립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찰 역시 신중한 자세로 사안을 주시하는 분위기다. 서울지역에서 근무하는 한 검찰 간부는 "비슷한 일이 검찰 임용 과정에서도 충분히 문제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언급을 자제했다.
지난 1일 열린 단기 경력법관 임용식에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신임 법관으로부터 선서를 받고 있다.사진/대법원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