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공단(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은 50년이 넘는 역사만큼이나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의 소재로 쓰였다. 과거 구로공단은 예술작품 속에서 슬픔과 비극의 모습으로 주로 그려졌다.
가장 유명한 것은 작가 신경숙의 구로공단 생활을 담은 자전적 소설 '외딴방'이다. 소설 속 주인공 '열여섯의 나'는 한국수출산업공단(현 한국산업단지공단)의 직업훈련원에서 훈련을 받으면서도 글을 쓰고 싶은 꿈이 있는 소녀다.
소설을 통해 신 작가는 오전 6시에 기상, 보건체조와 식사를 마치고 훈련을 시작해 저녁 9시 점호를 마치면 일제히 취침하는 생활을 옮겼다. 주인공이 구로공단 내 기업에 취업하고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노조 탈퇴서를 쓰라는 회사상무의 협박을 받는 장면을 그리기도 했다.
이인휘 작가가 2004년 펴낸 '내 생의 적들'에서는 가리봉오거리가 디지털단지오거리로 바뀐 이정표를 부수려는 사내의 모습을 시작으로 시대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파란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들어가면 거리는 휑해지고, 기계 소리만이 가득한 모습을 나타냈다.
'가리봉 시장에 밤이 깊으면…' 이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시 '가리봉 시장'은 박노해 시인의 첫 번째 시집 ‘노동의 새벽’에 수록된 작품이다. 시인은 500원어치 떡볶이와 300원어치 순대 한 접시로 허기를 달래고 허탈하게 귀가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노동의 새벽에 수록된 작품 중 '손무덤'은 구로공단에서 살아가는 대학생과 여공의 삶을 그린 영화 '구로아리랑'에서 주인공 종미(옥소리 분)가 현식(이경영 분)에게 읽어주는 장면을 통해 소개됐다. 1989년 개봉했던 이 영화는 그로부터 2년 전 작가 이문열이 쓴 동명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이문열은 1985년 구로공단 내 구로공단 대우어패럴, 효성물산 등의 여공들이 벌였던 '구로동맹파업'을 배경으로 소설을 썼다.
구로공단 노동자로 살았던 공선옥 작가는 단편소설 '가리봉 연가'에서 돈 때문에 중국에서 시집온 조선족 명화가 가리봉에서 비극을 맞이한 결말을 통해 가리봉의 슬픈 자화상을 그렸다.
공지영 작가의 데뷔작인 '동트는 새벽'은 구로공단에 위장취업한 대학생 주인공이 공장 친구와 부정선거에 항의해 구로구청 점거농성을 벌이는 내용을 담은 단편소설이다.
한편 구로공단은 영화 속 촬영장소로도 많이 사용됐다. 지난 1994년 개봉된 김홍준 감독의 '장미빛 인생'은 가리봉시장에 있는 엄지만화방 마담(최명길 분)과 다양한 사연을 가지고 만화방에 모인 인물들을 모습을 담았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엄지만화방은 실제 시장 내 만화광장을 이용해 촬영했다.
이창동 감독의 1999년작 박하사탕의 촬영은 전북 군산의 세트장에서 이뤄졌지만 공간적 배경은 구로공단으로 삼았다. 영화에서 구로공단은 영호(설경구 분)의 첫사랑 순임(문소리 분)이 박하사탕을 만들던 공장이 있는 곳으로,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영화 위로공단 포스터. 사진/엣나인필름
이달 13일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임흥순 감독의 단편영화 '위로공단'은 과거 구로공단이 디지털단지로 바뀌었지만 공장 속 여공1, 여공2가 빌딩숲 속 미생1, 미생2로 이름만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과거 노동자와 별반 나아질 것이 없는 오늘의 모습을 데칼코마니처럼 묘사한 위로공단은 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구로공단이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변모함에 따라 최근에는 현대화된 모습으로 영화에 등장하기도 한다. 지난 2009년 개봉했던 영화 전우치에서는 주인공 전우치(강동원 분)와 요괴들이 도심 속 추격전을 벌이는 장소로 사용됐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