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철 한국공인회계사회
홍보팀장
‘무임승차(無賃乘車)’. 노력이나 비용 없이 무엇인가를 쉽게 얻는 행위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된 ‘표절(剽竊)’. 일종의 무임승차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창작한 저작물의 일부 또는 전부를 도용·사용함으로써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발표하는 것이니 말이다. 표절을 한자어로 보면 ‘무엇을 벗겨내 훔쳐간다’로 그 의미가 뚜렷해진다. 쉽게 말해 무단으로 베끼기다. 필자에게도 낯 부끄러운 무임승차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시절이었다.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구의 공책을 보며 숙제를 베꼈던 적이 있다. 죄책감이나 거리낌 없이 내 시간과 노력을 아낀 것이다. “이 정도쯤은 괜찮을 거야, 선생님이 숙제검사할 때 아마 모르실거야”를 마음속으로 최면을 걸며... 지나 보니 참 낯 부끄러운 추억이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 표절시비가 화제뉴스로 등장했다. 시간을 1980 ~ 1990년대로 돌려 보자. 당시 우리 방송업계에서는 일본의 방송프로그램 베기끼가 암묵적 관행이었다. 방송을 벤치마킹할 측면이 많았는지 일본 프로그램을 입수해 큰 노력 없이 포맷과 내용을 쉽게 차용하는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는 우리 방송프로그램의 포맷을 중국, 유럽 등지에 수출하는 시대가 열렸으니 자랑스럽다. 표절시비는 고위공직자 사회에서도 나타났다. 투명함이 강조되는 사회로 바뀌면서 고위공직자 선임 때 인사청문회가 도입되었다. 인사 검증과정에서 학위논문 표절이 심심치 않게 드러나고 있다. 손꼽을 만한 실력과 좋은 평판을 갖췄음에도 논문표절이라는 문제가 불거져 도덕성에 흠결이 생겨 낙마하는 사례를 종종 지켜봤다. 표절로 인해 나타난 우리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얼마 전 일이다. 더욱 충격적인 표절시비가 문학계에서 일어났다. 한 평론가가 어느 매체 기고를 통해 국내 문단의 고질적인 병폐라며 한 정상급 작가를 향해 표절의 화살을 쏘았다. 표절시비에 몰린 그 작가는 때늦은 궁색한 변명을 했지만, 그동안 쌓아 놓은 명성에 메울 수 없는 금이 갔다. 이처럼 몇몇 분야의 표절과 표절시비는 우리 사회의 가슴 아픈 단면이다.
그렇다면 왜 표절이 끊이지 않나. 우선 표절의 유혹이 강하기 때문이다. 창작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쉬운 표절을 선택하게 된다. 창작물을 이전보다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IT환경의 변화도 또 다른 이유다. 둘째, 표절시비가 생겨도 표절으로 결론내기란 쉽지 않다. 표절기준이 분야에 따라 제 각각인 데다 다양해진 표절기법 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또 표절시비에 몰렸더라도 당사자는 표절을 부인하며, 영감을 받아 창작했다고 발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기준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셋째, 표절에 대한 사회적으로 관대함이 있다. 표절시비가 종종 등장하지만 표절이라고 결론내기 어렵고, 표절과 베끼기에 엄격하게 대처해야 하는데도 사회적으로는 너그럽고 관대하기만 하다.
불량한 양심에서 비롯된 표절이라는 무임승차는 돈내지 않고 취식하는 이른바 ‘공짜점심’과 무엇이 다른가. 베끼고 표절하는 것이야 말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다. 어릴 때부터 도덕과 윤리교육을 통해 각자의 마음에 바른 윤리의식이 깊숙이 자리잡아,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음을 느껴야 한다.” 초등학교 교육과정에 인성교육이 포함된다는 최근 뉴스가 기대되고 반갑게 느껴지는 이유다.
박영철 한국공인회계사회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