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게시글이 명예훼손에 해당할 때 이를 피해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삭제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이 증진될 것인가, 권력층에 대한 비판이 차단될 것인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명예훼손성 게시물을 제3자의 신청 또는 방심위 직권으로 삭제·차단할 수 있도록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 중인 가운데,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 주최로 ‘방송통신 심의 이대로 좋은가’라는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유 최고위원은 “방심위의 이같은 시도는 대통령, 고위공직자, 권력자 및 국가 권력기관에 대한 비판을 손쉽게 차단하는 수단으로 남용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심위는 지난 7월9일 전체회의에서 해당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했으나 야당 측 심의위원들의 반대로 통과시키지 못했다. 오는 13일 전체회의에 재상정해 입안예고하겠다는 입장이다.
방심위가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는 이유는 상위법인 정보통신망법과 형법에서 명예훼손죄가 반의사불벌죄(당사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하지 못하는 것으로 일단 피해자 요청 없이 수사를 진행할 수 있음)로 규정돼 있으므로 통신심의도 이에 맞춘다는 것이다. 앞서 박효종 방통심의위원장은 심의규정이 개선되면 적극적으로 자기보호를 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증진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1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유승희 최고위원 주최로 ‘방송통신 심의 이대로 좋은가?’라는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김미연 기자
그러나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동찬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은 “수많은 법률전문가들이 법 체계상 문제가 없다고 말하고 있고, 개정안은 정치적 의도로 남용될 수 있어 현행 규정이 행정심의 취지에 더욱 부합한다”며 “방심위는 오직 ‘망법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장주영 법무법인 상록 변호사는 “현재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에서 열거하고 있는 권리침해정보에는 반의사불벌죄도 있지만 친고죄도 있고 피해자의 의사를 묻지 않는 범죄 등 다양한 유형이 포함된다”며 “명예훼손 행위가 반의사불벌죄라는 이유로 당사자 신청없이 심의를 개시한다면 권리침해정보 중 불법정보의 유형을 일일이 구별해 달리 규정해야 하는 만큼 개정 이유가 논리적 일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 수사기관이나 법원과 달리 강제조사권이 없는 방심위가 명예훼손정보의 허위사실 여부를 판단하고 시정조치를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장 변호사는 “방심위는 최소규제의 원칙을 지키고 명백한 사안에 한해서 시정조치해야 한다”며 “방심위 시정조치가 아니라도 피해자는 형사고발, 민사배상, 법원을 통한 삭제청구 등의 방법으로 얼마든지 피해구제청구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자들은 방심위의 현행 운영방식에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며 심의기구 개선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지금까지 방송사가 방심위 결정에 불복해 제기한 총 9건의 행정소송 중 6건에서 방심위가 패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방송 내용의 대부분은 정부·정책을 비판하거나 대통령이 불편해할 만한 것들”이었다고 말했다.
장해랑 세명대 교수는 “검열관이 사복을 입는다고 국가검열이 아닌가”라며 “방심위는 민간기구의 형식을 취하지만 사실상 국가 행정기관으로서 정치로부터 독립성이 없어 정치권력 비호 용도로 동원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미연 기자 kmyttw@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