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얼굴이 매일 같이 변하는 한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여자가 있다. 얼굴만 바뀌면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 목소리, 덩치 등 외형이 바뀌는 건 물론 노인에서 아이까지 연령도 달라진다. 때론 남자친구가 여자가 되기도 한다. 너무나도 많은 얼굴을 갖고 있는 남자에게 이 여자는 이렇게 말한다.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새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얼굴을 모르는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 홍이수의 이야기를 담는다. 한효주가 연기한 홍이수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상 속의 이야기를 실제 있음직한 이야기로 여기게끔 한다.
한효주. 사진/BH엔터테인먼트
영화가 독특한 설정이라 촬영장도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정이 들 때쯤 되면 새로운 남자배우가 남자친구라고 다가오고, 또 웃음코드가 통할 만하면 새 남자가 나타난다. 데뷔 후 벌써 8년, 적지 않은 연기 경력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스트레스였다. "남자배우들과 어색하게 인사하고 나서 바로 뽀뽀했어요."
이수의 남자친구 우진 역할만 총 123명, 주요 배우만 21명이었다. 수많은 얼굴을 가진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눴던 한효주를 지난 11일 서울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그는 <뷰티 인사이드> 촬영 경험을 한 마디로 표현했다. “훌륭한 배우들과 데이트를 한 기분이었어요.”
한효주. 사진/NEW
◇"홍이수는 한효주의 실제를 담은 캐릭터"
워낙 독특한 설정이라는 점에서 <뷰티 인사이드>를 두고 '실험적인 영화'라고도 한다. 캐스팅도 복잡하고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 매번 다른 배우를 한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더한 난관이었다. 그런데도 영화 속 우진은 오롯이 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누군가는 21명 배우들의 열연 덕분이라고 하고 혹자는 백종열 감독의 디렉션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중심을 잡아주는 한효주의 연기가 없었다면 우진이 한 사람처럼 느껴지기는 힘들었을테다. 한효주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수를 표현했는지 물어봤다.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진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인 것처럼 하려고 했어요. 실제로 있다고 생각하니까 진짜 실제 있는 일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저의 모습이 정말 많이 투영됐어요."
이수의 모습 중 실제 한효주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친절하고, 다정다감하고, 잘 웃고 이런 모습"이라며 웃음을 보인 뒤 "특별하게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툭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어떤 배우가 올지 설레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좋은 배우들과 데이트를 한 기분"이라고 표현한 한효주에게 <뷰티 인사이드>는 캐릭터를 만들어 나가는 면에서도 색다른 경험이 됐다고 한다. 21명의 배우들이 한 캐릭터로 가꿔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두 번 다시 못 할 경험이었던 게, 훌륭한 배우들이 현장에서 자기 캐릭터를 만들어 가는 걸 지켜봤다는 거예요. 다 스타일이나 성향이나 성격이 다르잖아요. 본인이 생각해온 우진이 있을 것이고요. 정말 희한하게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하나의 우진이 되더라고요. 지켜보는 입장에서 즐거웠고, 좋은 공부가 됐어요."
한효주. 사진/NEW
◇"사랑받는 배우에서 변화하는 배우로"
충무로에서 멜로 영화는 쉽게 보기 힘든 장르가 됐다. 남녀가 사랑을 하는 모습이 다른 장르에 비해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최근의 인식 때문이다. 멜로 영화는 그야말로 '가뭄에 콩 나듯'이 제작된다. 그렇게 횟수가 적은데도 한효주는 스크린 속에서 줄곧 사랑을 해왔다.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도 <반창꼬>에서도, <쎄시봉>에서도 한효주는 사랑을 했다. 차기작인 <해어화>에서도 그는 사랑을 한다. '멜로의 여왕'이라는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왜 멜로영화는 한효주를 편애하는 걸까.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서 그런 걸까요? 하하. 남자 배우들이랑 호흡을 맞출 때 튀는 거 없이 잘 어우러진다는 평가를 종종 들었어요. 이번 영화에서는 21명이나 됐는데, 다 위화감이 없이 요즘 말로 '케미'가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점 때문이 아닐까요?"
한효주는 이번 영화를 촬영하면서 배역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고 했다. 이미지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서른 살을 4개월 앞두면서 조금은 더 진한, 격한 감정의 역할을 연기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단다. 그렇게 고른 작품이 <해어화>다. 시기와 질투를 하는 예인으로 분한다. <해어화>에서는 활짝 웃는 인상 대신 차가운 인상의 한효주를 만나볼 수 있다.
"<해어화>에서도 로맨스가 바탕을 이루지만 기존의 제 모습과는 좀 달라요. 이미지 변신을 과도하게 하진 않고 싶어요. 조금씩 천천히 변화하고 싶어요. 이제 배역에 대한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딱히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라는 건 없어요. 지금까지 해왔던 얼굴과 조금은 달랐으면 하는 거예요."
이제 곧 '계란 한 판' 서른 살로 향해가고 있지만 아직은 무감각하다는 한효주는 "그래도 왠지 앞으로 전문직이나 삶의 아픔을 가진 여자처럼 제가 해보지 못한 다양한 역할을 만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