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한국영화에서 여배우가 작품을 이끌어가는 캐릭터가 몇 개나 있겠어요. 그런 점에서 <암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어요." 지난 7월 개봉한 영화 <암살>에서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 전지현의 말이다.
실제 그간 한국영화에서는 선 굵은 남자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블록버스터나 남성 코드의 걸죽한 웃음으로 무장한 코믹영화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8월만 하더라도 극장가에는 <군도: 민란의 시대>,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해무>, <명량> 등 남성적인 영화가 즐비했다.
하지만 올해의 양상은 조금 다르다. 여배우가 '원톱' 혹은 '투톱'인 영화라 불릴 만한 작품들이 대거 쏟아졌다. <협녀: 칼의 기억>은 전도연과 김고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이정현, <뷰티 인사이드>는 한효주가 핵심 주인공이다. 한마디로 올해 8월 극장가는 '여인천하'다.
<협녀>에 출연한 전도연.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칼을 든 전도연과 김고은
영화 <협녀>는 고려말 대의를 위해 싸운 세 검객의 이야기를 다룬다. 중심축은 전도연이 연기한 월소와 김고은이 연기한 홍이다. 월소는 전설적인 세 검객 중 한 명으로, 복수를 위해 딸 홍이를 기른다. 홍이가 복수하는 과정이 영화의 큰 줄기를 이룬다.
두 여배우는 감정과 액션의 중심에 선다. 전도연은 특유의 뛰어난 감정연기로 주인공들의 비극적 운명을 부각시키며, 김고은은 감정의 폭이 큰 연기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뷰티인사이드> 여주인공 한효주. 사진/NEW
◇21명의 배우를 상대한 한효주
영화 <뷰티 인사이드>는 자고 일어나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29세 남자 우진을 둘러싼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잘생긴 남자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어린 아이,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우진의 몸은 수시로 바뀐다. 얼굴이 너무 많아 괴로운 우진이 우연히 사랑에 빠진 여성이 바로 한효주가 맡은 이수다.
이수의 상대역으로 21명의 남녀 배우들이 출연한다. 한효주는 수많은 사람과 하루씩 사랑하는 이수를 맡아 사랑스러운 모습과 일관된 감정선을 유지하면서, 관객이 우진을 한 사람으로 느끼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에 출연한 이정현. 사진/CGV아트하우스
◇파란만장한 인생 역경 겪는 이정현
지난해 개봉한 영화 <명량>의 홍일점이었던 이정현은 1년 만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원톱으로 올라섰다. 이 영화는 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경을 담고 있다. 극중 수남(이정현 분)은 연애, 결혼, 출산, 취업, 그리고 내 집 마련까지 모든 걸 포기한 '5포 세대'를 대변하는 캐릭터다. 영화는 수남을 통해 답답한 세상을 향한 통쾌한 복수를 그린다. 이정현은 이번 작품에서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뿐인 수남의 순수함과 맹목적인 열정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자배급사 NEW의 박준경 본부장은 "올해 영화들을 보면 여름에 맞는 시원한 액션이나 다소 남성적인 성향의 작품 속에서 강인한 여성의 여성미가 돋보인 작품이 많다"며 "강인한 여성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배우들이 훌륭한 연기력 덕분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