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돋보기)조회공시의 딜레마

'조회공시요구' 자체로 주가 급등하기도

입력 : 2015-09-03 오후 4:19:55
호주에서 무려 150년간 벌어진 '토끼의 난'을 아시나요? 한 세기를 넘어선 인간과 토끼의 지긋지긋한 전쟁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됐는데요. 토마스 오스틴이라는 한 영국인이 호주로 이민을 왔는데, 호주에는 사냥감으로 쓸 만한 토끼가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토끼 24마리를 들여왔는데, 그의 집에서 탈출한 토끼가 놀라운 번식력을 발휘하며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사건입니다. 호주에는 토끼의 천적이 없었기 때문에 3년 만에 토끼 수는 수천 마리로 늘어났고, 이 토끼들이 농작물과 풀을 모조리 해치우면서 호주의 사막화가 진행됐습니다. 호주 정부는 토끼 수를 줄이려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지만 15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수 억 마리에 달하는 토끼는 여전히 골칫덩이로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취미 생활을 위해 데려온 작은 토끼가 호주 전역의 환경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처럼 인생도, 역사도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식시장에서도 의도치 않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요. 주가 급등락을 막기 위한 일이 아이러니하게 주가 과열을 부추기는 사례도 종종 일어납니다. 특히 조회공시를 놓고 골치 아픈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요.
 
조회공시란 검증되지 않은 루머가 투자자들 사이에 돌면서 관련 종목의 주가가 급등락하는 일을 막기 위해 거래소가 해당 기업에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조치입니다. 뚜렷한 근거없이 주가 변동이 클 때도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을 요구할 수 있고요. 요구받은 시점이 오전이면, 그 기업은 그날 오후(보통 6시)까지 답변해야 합니다. 오후에 요청받았다면 다음날 오전(정오)까지 답변 공시를 내야하죠.
 
그런데 오히려 거래소 쪽에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는 사실 자체가 언론을 통해 쏟아지면서 주가가 더 급등락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종종 일어납니다. 루머를 몰랐던 투자자들이 뒤늦게 조회공시 뉴스를 접하고 ‘혹시나’하는 마음에 휩쓸리기도 하죠. 사실 무근으로 밝혀질 경우, 주가가 금세 급락해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고요. 예전에 만난 거래소 담당자도 이러한 일들에 대해 난감하고, 골치 아프다는 입장을 토로하기도 했는데요. 투자자들을 근거 없는 루머에서 보호하기 위한 정당하고 공정한 조치인데도 역효과가 종종 발생하니 곤란할 만합니다. 
 
이혜진 기자 yihj07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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