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당신은 영조일까, 사도세자일까

입력 : 2015-09-10 오후 5:22:35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과녁만을 향해 활을 쏘라는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답답한 아들이 있다. 결국 아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활 시위를 당긴다. 허공을 가르는 화살은 자유롭게 날아갔다. 쏜 화살이 과녁을 벗어난 대가는 혹독했다. 영화 '사도'는 자유로운 화살이 되고 싶었던 아들 사도세자와 과녁을 향해 쏘라고 다그치는 아버지 영조가 불러온 비극을 그린다.
 
영화 '사도' 스틸컷. 사진/쇼박스
 
아들은 직접 관을 만들어 그곳에 누워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람 취급 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다 관 뚜껑을 열고 칼을 집어든 아들은 아버지의 목을 향해 달린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에게 칼을 겨누지는 못한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버지는 칼을 내던지며 "자결하라"고 말한다. 아들은 "언제부터 나를 자식으로 생각했소"라며 반발한다. 이를 참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을 뒤주에 가둔다. 그로부터 8일이 지난 후 아들은 뒤주에 갇혀 죽는다. 영화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힌 8일간의 현재와 왜 이런 비극이 초래됐는지의 과거를 교차하는 구성으로 당시의 부자의 이야기를 재조명한다.
 
이 영화는 253년 전 사도세자의 죽음을 정치사가 아닌 가족사로 바라본다. 정치적인 배경을 최소화한다. 인원왕후(김해숙 분), 혜경궁홍씨(문근영 분), 영빈(전혜진 분), 세손(이효제 분) 등 참혹한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입장까지 입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면서 현 시대에 얽혀있는 세대 간의 갈등을 반영한다.
 
아버지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이 윗세대와 아랫세대간의 갈등을 상징한다. 영화에는 현대 가정의 부모 자식 사이에서도 충분히 오갈 수 있는 대사들이 등장한다. "자식이 잘해야 아비가 산다",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 등의 대사다. 이를 통해 영화는 세대간의 갈등과 소통에 대한 메시지를 전한다.
 
영화를 본 뒤 누군가는 영조에게, 혹자는 사도세자에게 감정을 이입할 것이다. 당신은 영조일까, 사도세자일까. 아니면 두 사람의 고통을 모두 헤아리는 입장이 될까. 관객들로 하여금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게 만들 만한 영화다.
 
영화 '사도'에서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
 
약 40년간의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는 그 이름값 이상을 한다. 특히 70세의 영조를 연기할 때 쇳소리는 그가 얼마나 영조를 연구했는지 보여준다. '변호인'으로 최고의 연기를 선보인 송강호는 '사도'를 통해 또 한 번 자신의 입지를 넘어선다.
 
사도세자를 연기한 유아인은 송강호의 내공에 밀리지 않는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완벽히 표현한다. JTBC '밀회'로 시청자를 홀리고, 영화 '베테랑'으로 묵직함을 선사한 그는 '사도'에서 또 한 번 엄청난 역량을 드러낸다. 올해 최고의 행보다.
 
김해숙, 문근영, 전혜진 등 배우들은 영화를 빈틈없게 만드는 연기를 펼친다. 특히 자신의 이름값에 비해 다소 비중이 적은 혜경궁홍씨를 연기한 문근영은 훌륭한 배우의 덕목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자신을 돋보이려 하지 않는 그의 연기 덕에 영화는 더욱 완성도를 갖는다. 훗날 정조가 되는 세손 역의 이효제의 연기는 놀라움을 준다. "어찌 아들이 되어서 아비에게 물 한 잔 줄 수 없사옵니까"라는 대사를 할 때의 그의 울부짖음은 많은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액션이나 큰 스케일 없이 오롯이 스토리만으로 엄청난 몰입도를 만든 영화다. '왕의 남자'를 연출한 이준익 감독은 유감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 걸작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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