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 기자] 영화 <베테랑>은 당초 지난해 추석 개봉을 염두해 만든 영화다. 하지만 지난해 추석까지 후반작업이 완성되지 않았다. 이후 12월 개봉을 노렸지만 배우 황정민 주연의 영화 <국제시장> 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연기됐다. 3월을 예상했지만, 영화 <조선명탐정>의 김명민·오달수 콤비와 <베테랑>의 황정민·오달수 콤비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또 개봉이 미뤄졌다. 그러던 중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는 영화가 훌륭하기 때문에 여름 시장을 노리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 선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영화 <베테랑>이 천만 관객 동원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개봉 3주차에 접어들었음에도 일일 5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 중이다. 이 영화는 개봉 19일 만에 900만 관객 고지를 넘었다. 이 정도 속도면 1000만 관객은 이번 주 안에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을 살펴보면 <베테랑> 관련 글은 배우 면면부터 감독과 영화 내용까지 호평일색이다. 900만 관객을 열광케 한 <베테랑>의 흥행 이유를 짚어봤다.
영화 <베테랑>이 900만 관객을 동원하며 천만 관객 달성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사진/CJ엔터테인먼트
◇갑을 누른 을, '통쾌함' 통했다
이 영화는 각종 콘텐츠에서 종종 활용했던 소재인 재벌의 '갑질'과 '탈선'을 다룬다. 극중 대기업 재벌 3세 조태오(유아인 분)는 상습마약범인데다가, 수 틀리면 무참히 사람들을 짓밟는다. 조태오의 탈선은 실제 현실 속 뉴스를 장식했던 사건들과 흡사하다. 이를 현실감 있게 풀어내 관객들의 분노를 유발한다.
광역수사대 서도철(황정민 분) 형사는 이러한 조태오의 대척점에 선다. 약자의 편에 서서 조태오의 잔인무도한 행위를 밝히려 한다. "돈은 없어도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는 철학을 가진 그의 정의구현은 각박한 현실에 지친 관객들에게 강렬한 통쾌함을 안긴다.
앞서 <베테랑>을 연출한 류승완 감독은 "이 이야기를 통해 형사 직업을 가진 어떤 이의 승리가 아닌 관객이 승리하는 기분을 주고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의도는 적중했다.
◇무거운 메시지를 가볍게 푼 오락성
대기업의 갑질을 고발하는 무거운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이를 그려내는 방식은 지극히 가볍다. 호쾌한 액션과 영화 중간 중간 숨통을 틔우는 유머, 이곳저곳이 부서지는 카체이싱이 담긴 영화 말미의 하이라이트는 상쾌함과 통쾌함을 준다.
특히 오달수, 장윤주, 김시후, 배성우, 천호진 등 주변 인물들을 이용한 유머는 적재적소에 배치돼 영화의 긴장감을 적절히 풀어줬다. 마치 홍콩영화를 보는 듯한 배우들의 액션도 영화의 볼거리를 제공했으며, 매섭게 내달리는 카체이싱은 스펙터클했다. <부당거래>와 <베를린> 등에서 화려한 액션을 보인 류 감독의 감각이 또 한 번 발휘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황정민, 유아인 등 배우들의 열연
영화의 두 중심인 황정민과 유아인의 연기력도 흥행 요소 중 하나라는 평가다. 두 사람의 열연은 123분의 러닝타임 동안 긴장감을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첫 악역으로 나선 유아인은 그간 볼 수 없었던 색다른 연기를 펼쳤다. 그는 러닝타임 내내 자기 밖에 모르는 안하무인의 행동을 섬뜩한 눈빛과 함께 표현해낸다. 광기 어린 그의 연기에 관객들은 분노했고, 이는 조태오가 무너졌을 때 더 큰 통쾌함을 안겼다.
반대로 황정민은 서글서글한 눈빛으로 유아인과 맞선다. 안정된 연기력으로 자신보다는 악역 유아인을 뒷받침해주며 영화를 이끌었다는 평가다.
오달수와 유해진을 비롯한 다수 배우들도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톡톡히 하며 빈틈없는 영화를 만들었다. 류승완 감독은 "'베테랑'을 향한 칭찬도 내게는 부담"이라며 "이 영화는 황정민 유아인 등 배우들의 영화다. 겸손의 의미가 아니라 배우들이 정말 좋다. 그래서 나만의 존중 방식으로 영화 크레딧에 배우들의 이름을 먼저 올렸다"고 말했다.
함상범 기자 sbrai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