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국회에서 ‘군대 갔다 와야 사람된다!’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토론의 주최자는 육군 장성 출신의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 늘 다투던 여야 의원들도 이날만큼은 한목소리를 낸 모양이다. “군대 갔다 와야 사람 된다는 말은 딱 맞는 말이다. 예전 군 생활했던 나이 드신 분들은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다(새누리당 심재철 의원)”, “군대를 갔다 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되려면 군대를 가야 한다(새정치민주연합 김춘진 의원).” 의원들의 축사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고? 그럼 군대를 다녀오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라고 반문한다면 이미 틀렸다. 여기서 ‘사람’이란 ‘한국 사회에 맞는 사람’으로 새겨야 한다. 모든 생물은 환경에 맞는 적응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갈라파고스 군도의 핀치새는 섬마다 나는 먹이가 달랐던 탓에 같은 종임에도 환경에 맞게 부리 모양이 제가끔 달라졌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과 ‘(한국)사람’이 되는 과정은 별개다.
우선 군대를 다녀오면 최저임금 따위에 연연하지 않고 ‘근로(勤勞)’할 수 있다. 병(兵)으로 복무하는 이들의 올해 월급은 상병 기준으로 154,800원이고, 시급은 967.5원쯤 된다. 평일 20일·하루 8시간 기준이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셈을 달리하면 시급도 다르게 나오지만, 큰 차이는 없다.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의 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 중 최저임금 미만을 받는 비율은 11.4%, 약 209만 명으로 나타났다. 네덜란드(0.3%)·영국(0.8%)·호주(2.0%)·일본(2.1%)·미국(2.6%) 등과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여기서 군대의 역할이 빛난다. 외국이 아니라 시급이 천원도 되지 않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예비역들의 얼굴은 언제나 싱글벙글.
<최저임금> 군대에 다녀오면 시급이 5,000원만 되도 엄청난 임금상승률을 느낄 수 있다. 사진/바람아시아
군대에서는 ‘다치면 손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우스갯소리로 군에서는 “외상에는 빨간약, 내상에는 감기약”이란 말이 있다. 자질과 인성이 부족한 일부가 최선을 다하는 대부분의 히포크라테스들을 욕보이는 셈이다. 이들에게 제대로 데인 몇몇의 직접경험은 군인 모두의 간접경험으로 공유된다. 확대된 공포가 허상만은 아닌 게, 군 병원에서 잘못된 진료로 애꿎은 청년들이 죽거나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례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다. 중상까지는 아니라도, 전역하고 가벼운 불편을 안고 사는 이들은 주변에 흔하다. 사고와 재난에 허둥지둥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 군대에서 배운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행동수칙을 다시 한 번 가다듬게 된다.
주거에 까다로웠던 이들도 전역하면 무던해진다. ‘생활관’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만, 실상은 ‘수용소’에 가깝다. 처음에는 사생활 없이 강요된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느낄 수 있지만, 군대에서 시간은 어지간한 지휘관보다 유능하다. 많게는 열 명도 더 넘게 부대끼는 생활관에서 2년 동안 단련된 어제의 미성숙한 청년은, 이제 어지간하면 안분지족(安分知足)하는 성숙함을 지닌다.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노력’을 적어도 ‘내 집 마련’이란 헛된 꿈에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현명함은, 군대를 다녀온 이의 분명한 장점이다.
군대에서는 ‘신뢰’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입영행사에 관련 부대장은 으레 장정들의 부모나 가족, 친구 등에게 “아들을 잘 돌보겠다”고 약속한다. 입대장병 중 몇몇은 ‘요즘 군대 좋아졌다더니…’하며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다. 조교나 간부, 선임 등의 도움에 힘입어 그 생각이 삶에서 가장 못난 오판(誤判)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구타·가혹행위로 직접 숨지거나, 또는 자살에 내몰린 희생자들을 대하는 군의 태도를 돌이켜 보자. “평소에는 우리 가족, 사고나면 너희 가족”으로 표현되는 냉혹함은 항상 의심하고 주의하는 태도를 길러준다. 지난해 11월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인의 ‘사회 신뢰’ 수준은 10점 만점에 4.59점으로 나타났다. OECD의 지난달 발표에서는 한국 국민의 정부 신뢰도가 34%로 나타났다. 청년들은 사회에서 필요한 불신(不信)과 조심성을 군에서 선행학습 한다고 볼 수 있다.
“군대 갔다 오면 사람 된다”라는 훈계에 반항할 줄만 알았지 그 깊은 뜻을 음미하려는 노력은 부족했음을 시인하자. 최저임금, 주휴수당 등이 어겨지는 게 일상인 사회에서 최저임금 이하의, 주휴수당 없는 노동 경험은 귀중하다. 시민의 안전에 심드렁한 이 나라에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지켜내는 연습은 얼마나 중요한가. ‘내 집’을 마련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사회에 들기 전 ‘내 공간’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는 연습, 그리고 불신 사회로 나서기 전에 신뢰의 무게를 달아보는 경험, 그 외에 일일이 늘어놓지는 않았지만 군대는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생존전술을 거의 빠짐없이 가르친다.
모처럼 생산적인 토론회를 연 국회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19대 국회에는 수형·질병 등의 이유로 ‘한국 최적화 사람 양성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이들이 49명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토론회에 자리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만 해도 군복무와 대학 재학이 시간상으로 겹치는 의혹이 있고, 만기제대가 아닌 이병 소집해제다. 물론, 김 대표의 충실한 병역 이행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의 행보에서는 한국의 정치·사회·문화 등에 관해 깊은 이해가 묻어난다.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큰 정치인 김무성 대표가 있겠는가. 김 대표는 큰 그릇이고 명민해서 화낼 일도 없고 오해할 일도 없다. 문제는 모든 사람의 그릇이나 이해력이 그만하지는 않다는 데에 있다. 국회에서 ‘인간 실격’을 주제로 진지하게 토론회를 열었다는 소식을 접한 국회 안팎의 많은 ‘실격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맞는 말이라도 세련되게 하는 배려가 아쉬운 대목이다.
**이 기사는 <지속가능 청년협동조합 바람>의 대학생 기자단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에서 산출하였습니다. 뉴스토마토 <Young & Trend>섹션과 YeSS의 웹진 <지속가능 바람>(www.baram.asia)에 함께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