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 암흑기다. 올해 최대 이슈였던 미국 기준금리 인상 논의는 일단 미뤄졌지만,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중국 경제둔화, 신흥국 위험 등 불확실성이 두드러지면서 투자자들은 좀처럼 투자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내외 변수를 고려할 때 변동성 확대가 불가피하다며 당분간 공격보다 방어를 우선하는 전략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자산을 기준으로 중국 등 신흥국 자산의 비중은 축소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선진국 통화와 채권 비중을 늘려가는 전략이 유효하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 이슈가 불거질 경우 신흥국 시장의 충격이 예상되지만, 그 파급력을 예단하기 쉽지 않다고 우려한다. 지난 9월 미 연준이 연방공개시장회의(FOMC)에서 금리 인상 논의 시점을 뒤로 미룬 것도 중국 경기둔화 때문이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분위기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예전 같으면 금리 인상 우려가 희석되면 증시가 급등하는 등 위험자산 선호현상이 강화됐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미국이 금리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중국과 신흥국 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증시도 크게 휘청거렸다. 미국 S&P500은 장기 추세인 200일선을 이탈한 뒤 한 달이 넘도록 낙폭의 절반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이후 200일선을 네 차례 이탈한 뒤 일주일 만에 가볍게 올라선 것과 상반된 모습이다. 중국 상해지수와 독일과 유럽, 일본도 하락 폭의 23.6%도 만회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세계 경기둔화 우려와 더는 시장을 끌어주지 못하는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신동준 하나금융투자 자산분석실장은 “위험선호도에 대한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며 "안전선 안으로 투자자산을 지키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로벌 자산배분 관점에서는 달러(미국), 유로(유럽), 엔(일본)으로 표시된 채권과 주식비중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투자매력을 보면 미국>유로존>일본 순이다. 문수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은 경기의 정점 논란과 중국 경기의 경착륙 이슈가 불거지기 전인 내년 1분기까지는 기회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연초 이후 좋은 성과를 보였던 일본과 유로펀드는 최근 들어 양적완화 효과가 줄면서 기업의 이익전망이 하향조정되는 추세라는 점에서 투자순위가 밀렸다. 특히, 일본은 양적완화에 대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의견이 두드러지면서 추가 반등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선진국 통화로 투자할 경우 시중은행에서는 달러 비중을 유지하되 엔화와 유로가 양적완화 기대로 약세가 진행될 때 늘려가는 전략을 권했다. 시중은행 PB관계자는 "엔화나 유로는 기축통화이지만 현재 일본과 유럽이 양적완화를 시행하고 있어 약세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가치가 오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저가에 매수하는 전략도 방법이다. 단, 단일 통화로 보유하는 것은 환전수수료 등 비용 측면에서 합리적이지 않다. 차라리 주식을 통해 환오픈형 해외 펀드를 보유하거나 또는 선진국 통화로 표시된 채권, 혹은 달러표시 펀드로 투자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
위안화(중국)나 헤알(브라질)등 위험국 자산 비중은 점차 줄여나가야한다. 연내 미국이 금리인상을 하지 않더라도 내년 금리인상 이슈가 시작될 경우 신흥국에서 자금 이탈과 통화 약세는 불보듯 뻔하다. 박혁수 대신경제연구소 연구원은 "이슈가 터지면 신흥국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이라며 "내년 1분기까지는 가격이 반등할 때마다 위험자산 비중을 서서히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 둔화가 진행중인 중국의 경우 부실채권이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현재 중국 민간부채의 91%가 기업부채로 나타났다. 해외에서는 부실채권에 대한 은행의 완충능력을 고려할 때 당장 경착륙을 논의할 단계는 아니지만 내년 하반기까지는 신중한 추가 점검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다만, 외부 충격으로 금융시스템 위험이 부각될 경우 시장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내 자산도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줄여나가는 게 맞다. 통화로 볼때 원화는 위험자산에 속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연내 1200원을 넘어 중기적으로 상승 흐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는 원화 자산을 보유하면 가치가 하락할 것이란 얘기다. 다만, 원화 표시 자산내에서 비중을 늘린다면 장기 채권이 유리하다. 미국 기준금리는 연내 인상이 어렵더라도 내년 하반기에는 올릴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 때 기준금리가 0.75% 수준까지 오른다면 한국의 기준금리는 1%~1.25% 수준에 머물 것이란 예상이다. 그러나 기축통화가 아닌 한국이 양적완화를 통해 부양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장기 채권 금리 하락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금리 하락은 곧 수익률 상승을 의미하는 만큼 향후 원화 표시 주식보다 장기채권 투자매력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명정선 기자 cecilia1023@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