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형진기자] 지난 7일 청와대 등 정부기관 홈페이지와 은행권 웹사이트가 실체를 알 수 없는 세력으로부터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받아 국내외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는 사고 발생 5시간여가 지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사이버 경보를 '주의' 수준으로 올렸다.
혼란은 이때부터 가중됐다. 국가정보원이 갑자기 'DDoS공격의 배후가 북한이나 북한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발표한 것이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도 "사이버 테러는 전쟁보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다.
거의 비슷한 시각 방통위와 한국정보보호진흥원은 공식브리핑을 통해 "DDoS 공격의 배후를 밝히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민간기업들이나 보안전문가들도 국정원의 발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와중에 '전쟁' 발언을 했던 최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순방을 수행하기 위해 출국했다.
주말을 고비로 DDoS 공격이 잦아들던 지난 14일, 이번에는 경찰이 이번 DDoS공격을 수행한 좀비PC에서 파일목록이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안철수연구소 등 민간 보안 업체들에 다시 비상이 걸렸다. 이번 DDoS 공격이 단순히 트래픽을 폭증시키는 공격일뿐 정보를 빼내가는 해킹공격은 아니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방통위 고위관계자는 "경찰이 잡으라는 범인은 안잡고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다"며 곤혹스러워했다.
곧이어 베트남의 보안기술진이 DDoS공격의 진원지가 영국임을 밝혀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방통위가 다시 부랴부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공식 브리핑을 실시했다. 그동안 진원지를 알고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범인을 잡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우리 기술로 제대로 밝히지 못했던 공격 진원지를 베트남 기술진이 밝혀낸 14일 아침, 한 외신은 "한국정부의 '에릭슨 5년간 2조 투자' 발표는 허구"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청와대는 유럽순방 이전부터 언론에 '우리정부가 에릭슨이 4세대 이동통신 분야 LTE를 한국에 정착시키도록 5년간 15억달러 수준의 투자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정보를 흘리고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외신 보도 뒤 방통위 차관보가 공식브리핑을 통해 "에릭슨 회장이 대통령한테는 말하지 않았지만 최 위원장에게는 직접 투자규모를 밝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에릭슨은 이날 오후 늦게 "한국정부와 정확히 합의하고 이해했다"고 전제하면서도, "1000명 수준의 인력 고용은 맞지만 투자일정과 규모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는 취지의 공식 보도자료를 냈다.
그뒤 정부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언급을 않고 있다.
방통위도 "회장이 말했으니 별 문제 없다"는 태도다.
이 대통령의 유럽순방 기간 중 발표됐다가 논란을 빚은 '에릭슨 한국투자' 건은 경위야 어찌됐든, IT강국을 자부하는 우리로서는 국제적인 망신이 아닐 수 없다.
트래픽 폭증을 유도하는 단순한 종류의 사이버 공격에 온나라가 들썩거리고, 정부가 갈팡질팡하던 끝에 민간업계가 겨우 해법을 찾아내는 황당한 상황도 낯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주부터 벌어진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나라 GDP(국민총생산)의 20%를 떠받치고 있다는 정보통신 강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해 씁쓸하다.
뉴스토마토 이형진 기자 magicbullet@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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