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독립기구인 선거구획정위원회(이하 획정위)가 13일 내년 20대 국회의원총선거 선거구획정안 국회제출 법정시한(총선 6개월 전)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대년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획정위가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할 법정기한인 10월 13일까지 그 소임을 다하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으로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선거구획정을 위한 인구산정기준일과 지역선거구 범위를 결정했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든 합리적인 안을 도출해야 할 획정위가 위원 간 의견 불일치에 따라 합의점을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개혁이 나아갈 길에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해야 할 역할을 다하지 못해 국민여러분께 다시 한 번 송구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 여야 정치권을 향해 “비록 획정위가 법정기한을 지키지 못했지만 내년 국회의원 선거가 차질 없이 치러지도록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가 정치적 결단을 발휘해주길 국민과 함께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당초 획정위는 사과문에 그간 논의해온 구체적인 내용과 마지막까지 획정기준을 제시하지 못한 여야 정치권의 책임을 묻는 내용 등을 담을 계획이었지만 이날 오전 마지막 회의를 거치면서 관련 내용을 배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국회에서 획정기준을 마련하면 재논의에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획정위는 선거구 구역표가 확정되고 그 효력이 발생할 때까지 유효하다. (국회가) 획정기준과 의원정수비율을 준다면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답했다.
획정위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저는 중앙선관위가 지명한 1인이고 나머지 8명의 위원은 학계, 언론계, 법조계, 시민사회단체와 정당이 추천한 분들이다. 위원들이 그동안 자기 살아온 소신과 학문적 철학 등을 담아 획정위에서 그동안 의견을 제시했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지난 7월 출범한 획정위는 전날까지 선거구 획정안 마련을 위해 마라톤 논의를 거듭했다. 그러나 현행 지역구 의석수(246석) 유지에만 대체적으로 합의했을 뿐 농어촌 지역대표성 확보 방안 등 세부 사안에 대해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법적으로 독립기구인 획정위가 끝내 최종안을 도출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로는 여야 정치권이 획정기준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 우선적으로 꼽힌다. 여기에 획정위가 당초 설립취지와 달리 여야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도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형식상 획정위원은 각계로부터 추천받은 총 45명의 후보 중에서 선정됐다. 그러나 중앙선관위가 추천한 김대년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8명에 대한 최종확정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여야합의로 하면서 사실상 여야가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사를 4명씩 나눠가졌다. 여기에 새누리당은 직접 2명을 추천하기도 해, 무늬만 독립기구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익명을 요청한 한 획정위원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평소 연구논문 등에서 비례대표 확대를 주장하셨던 분이 여당 쪽 추천으로 들어오니 비례대표를 줄여야 한다고 입장을 바꾸더라”며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편 여야는 이날도 선거구 획정을 둘러싼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농촌지역 지역구 축소를 최소화하고 비례대표를 줄인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것이 옳은 길”이라며 “그걸 문재인 대표가 한 석도 못 줄이겠다고 하는데서 오는 문제다”라고 야당에 책임을 돌렸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의 회동에서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이지 않는 가운데 지역대표성을 확보할 방안을 갖고 있는데, 새누리당이 무조건 비례대표를 줄이는 방안만 이야기하고 있어 어렵다”며 “조만간 안을 공개해 국민들이 평가하도록 하겠다”고 반박했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김대년 선거구획정위원회 위원장이 “내년 20대 국회의원 총선거 선거구 획정안의 국회 제출시한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며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사진/뉴시스